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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몰래 아들에게 '젤리 상납'하는 사연

입력
2016.03.3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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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랑 사이가 다시 멀어졌다. 원래 주중에 소원해졌다가도 다시 주말에 가까워지는 그런 사이였지만, 이젠 주말에도 가까워지지 못하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치부 기자 아빠들의 생활이 다 그렇겠거니 하고 있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냥 좀 쉬고 싶은 나머지 옛날처럼 적극적으로 놀아줬다고 장담하긴 어렵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아빠를 바라보는 아들의 두 눈은 예사롭지 않게 달라졌다. 길거리 돌 보듯 한다고나 할까, 이 아빠를 향한 웃음기, 호기심 좔좔 넘치던 눈빛은 온데간데 없다. 이 아빠는 그런 아들 모습이 어색했지만, 이제 그 어색함마저 엷어지고 있다.

이 아빠가 쉬기로 돼 있어 아내가 다른 일정을 잡았던 어느 일요일 오전 국회 정론관의 한 풍경. 아들이 일 하는 아빠 옆에서 핑크퐁 동영상을 감상하시는 장면 되겠다. 맡길 데가 없어 데리고 나왔는데, 30분쯤 뒤 아들의 이모가 와서 모셔갔다.
이 아빠가 쉬기로 돼 있어 아내가 다른 일정을 잡았던 어느 일요일 오전 국회 정론관의 한 풍경. 아들이 일 하는 아빠 옆에서 핑크퐁 동영상을 감상하시는 장면 되겠다. 맡길 데가 없어 데리고 나왔는데, 30분쯤 뒤 아들의 이모가 와서 모셔갔다.

이런 저런 일로 쉬기로 한 날 갑자기 출근을 하게 돼 난감했던 적이 있다. 결국 아들을 데리고 놀아줄 형 누나가 있는 선배네 집에 맡기고서야 출근을 했는데, 그때마다 선배와 형수는 ‘엄마 아빠 찾지 않고 어찌나 잘 노는지, 다 컸네 다 컸어’식의 감탄을 쏟아냈다. 맡기고 나올 때 쿨하게 헤어져 줘서 고맙고, 밤에 찾으러 갈 때까지 중간에 울고 불고 하지 않고 형 누나들과 즐겁게 놀았다고 하니 대견하기도 하지만, 32개월도 안된 아들이 엄마 아빠 한번 안 찾았다고 하니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아내는 최근 바가지를 긁기 시작했다. 대목인 점을 백 번 감안해도 “이건 아니지 않냐”하는데, 이 아빠가 거기에 갖다 붙일 수 있는 말은 눈을 씻고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아들에게 언제 책을 읽어 줬는지 기억할 수 없고, 집에서 언제 밥을 먹었는지도 기억해낼 수 없는 정도가 되고 보니 이 말이 이젠 입에 붙었다. “좀 지나면 나아지겠지… 맨날 이러겠어?”(그런데 사실 이것도 장담할 수 없는 말이다.)

아내 인내심이 임계치에 다다른 분위기를 직감하고 야밤 설거지 등 집안 일에 더 열을 올리기도 했다. 그것만으론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의 요구 사항은 “아들과 좀 더 놀아달라”는 것.‘아들이 아빠를 찾는데 그 순간에 아빠는 없고, 그러다 보니 아들이 이젠 아예 아빠를 찾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 고민을 들은 선배 동료들은 위로랍시고“모든 아빠들이 다 거치는 과정”이라고 하는데, 사실 큰 도움이 안 됐다.‘이 생활이 정상인 거고, 계속 이렇게 살라는 이야기잖아?’

최근 팔 다리를 시도 때도 없이 박박 긁어대던 아들이 결국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웬만하면 보습 해주고, 잘 씻겨서 넘어가려고 했지만 엄마 아빠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것 같아 아내가 동네 병원에 데려갔다. 아토피 초기라는 진단을 받았다는데, 이 이유를 듣고 뜨끔했다. “병원에선 색소가 든 사탕이나 젤리,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어서 그렇다는데, 혹시 당신이 먹였어?” 처방 받은 연고를 몇 번 바르고 나니 정말 거짓말처럼 말끔해지긴 했지만, 앞날이 막막해졌다.

동네 편의점 젤리 진열대 앞에서 뭘 먹을지 고민하고 있는 아들놈. 저 많은 종류의 젤리를 한번씩은 다 맛 봤지 싶다.
동네 편의점 젤리 진열대 앞에서 뭘 먹을지 고민하고 있는 아들놈. 저 많은 종류의 젤리를 한번씩은 다 맛 봤지 싶다.

이 아빠는 아내 몰래 아들에게 젤리를‘상납’하고 있던 중이었다. 아들은 아파트 단지에 있는 편의점 젤리는 물론 옆 동네 다른 마트의 짜먹는 젤리까지 두루 섭렵했다. 그 젤리들은 아빠를 돌 보듯 하는 아들놈에게 즉효약이었고, 팍팍해진 부자 관계를 단시간에 복원시키는 윤활유였다. 생각이 없었던 것인지, 알고도 그랬던 것인지 분명치 않다. 자책, 자괴감에 핑계거리를 찾는 것도 생존본능이라고 할 수 있을지. ‘저녁이 있는 삶’을 살았더라도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머릴 떠나지 않는다.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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