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상대적이다.
한국인이라면 1993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1994년 미국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를 ‘기적’이라 말하지만 일본인들은 ‘참사’로 기억한다. 당시 최종전에서 이라크가 종료직전 동점골을 터뜨려 일본과 비기는 바람에 한국은 어부지리로 월드컵 본선에 갈 수 있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극적인 뒤집기에 중국은 지옥에서 살아왔고, 북한은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북한은 29일(한국시간) 필리핀 마닐라 리잘 메모리얼 스타디움에서 필리핀과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통합예선 H조 마지막 경기를 했다. 그 전까지 H조 2위를 달리던 북한은 최종예선 진출이 유력했다. 같은 시간 우즈베키스탄-바레인 결과에 따라 조 1위도 노려볼 수 있었고 아니어도 필리핀만 잡으면 자력으로 와일드카드를 딸 수 있었다.
북한은 선제골을 내줬지만 전반 막판 동점, 후반 초반 역전에 성공해 기세를 올렸다. 하지만 경기종료 11분을 남기고 악몽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필리핀이 후반 34분과 종료직전 잇따라 2골을 작렬했다. 필리핀은 이미 최종예선 탈락이 확정됐지만 홈 팬들 앞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려는 의지가 강했다.
북한의 패배가 확정되면서 중국이 최종예선 무대를 밟게 됐다. 중국은 카타르와 C조 최종전에서 이미 2-0으로 승리해 놓고 초초하게 북한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와일드카드 순위는 각 조의 최하위 팀과 결과를 제외한 승점만 따지는 데 필리핀에게 패한 북한은 승점 10, 카타르를 이긴 중국은 승점 11이었다. 만약 북한이 필리핀을 눌렀다면 승점 13으로 중국을 제칠 수 있었다.
중국은 ‘마닐라의 기적’덕분에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16년 만의 월드컵 본선진출 꿈을 이어갔다.
나머지 와일드카드 두 장은 E조 시리아(승점 12)와 F조 이라크(승점 12)에게 돌아갔다.
이로써 최종예선에 나갈 12팀이 확정됐다. 와일드카드 4장 외에 한국을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와 호주, 카타르, 이란, 일본, 태국, 우즈베키스탄이 A~H조 1위로 최종예선에 직행했다.
최종예선 조 추첨은 내달 12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다.
윤태석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