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의 가장 오래된 바 중 하나인 맥솔리 올드에일 하우스(McSorley’s Old Ale House·이하 맥솔리)는 사시사철 관광객과 뉴요커들로 붐비는 아이리시 펍이다. 1854년 존 맥솔리가 맨해튼 이스트 빌리지에 문을 연 이래 160여 년간 뉴욕 노동자들의 쉼터이자, 링컨 대통령, 야구 선수 베이브 루스, 루스벨트 대통령 등이 맥주를 마신 역사적인 펍으로 자리 잡았다. 오랜 시간 고집스러운 세월을 지켜온 이곳은 1970년까지 여자는 출입금지였으며, 술은 단 두 가지-다크 에일과 라이트 에일-만 판다. 다른 바에서는 당연한 음악도 없고, 그 흔한 텔레비전도 없다. 대신 벽을 가득 채운 액자 안의 빛 바랜 사진들, 정겨운 바텐더와 웨이터들, 그리고 이곳을 찾는 이들의 대화가 공간을 채운다. 바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역사의 한 부분에 발을 들이는 듯한, 체험형 민속 박물관의 느낌이다.
평소에도 시끌벅적한 맥솔리가 일년 중 하루,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축제 분위기로 발 디딜 틈이 없는 날이 있다. 매년 3월 17일 성 패트릭의 날이다.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인 성 패트릭을 기념하는 날이 미국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19세기 중반 아일랜드의 대기근으로 200만명 가까이 이민을 떠난 이래 많은 아일랜드인들이 뉴욕, 보스턴, 필라델피아 등지에 자리잡았고, 지금도 13%에 가까운 뉴욕 주민이 아일랜드 교포로 추정되고 있다. 초기 이민자로서 많은 핍박과 차별을 견뎌야 했던 아일랜드 교포들에게, 성 패트릭의 날이라는 기념일과 퍼레이드는 아일랜드 교포로서의 자긍심을 상기시켜준 기회가 됐을 터. 지금도 매년 이 날에는 주황색과 녹색의 아일랜드 고유 의상을 입은 아이들과 전통 의상인 킬트를 입고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아저씨들의 퍼레이드가 오후 내내 맨해튼 5번가를 가로지르는 걸 볼 수 있다. 더불어 맨해튼 거리에는 초록색이 눈에 띄게 많아진다. 아일랜드 교포든 아니든,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초록색 장식과 아일랜드의 천주교를 상징하는 샴록(Shamrockㆍ클로버 잎 모양 장식)은 가장 쉽게 축제 분위기에 편승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실 성 패트릭의 날은 술 마시기 위한 기념일로 전락해버렸다는 질타를 종종 받기도 한다. 평일임에도 밤 늦게까지 곳곳의 바에서 지나치게 많이 마신 이들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날 뉴욕 아이리시 펍의 원조인 맥솔리에 사람이 몰리는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뉴욕의 유명 음식전문 웹 매거진 ‘이터 (Eater)’의 편집자 소냐 초프라는 맥솔리가 아침 8시에 오픈 하기 전부터 40여명이 줄을 서 있는 상황을 SNS로 생중계하기 시작했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오전 11시에 들른 맥솔리는 이미 거의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복잡했지만,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느긋한 여유와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바텐더와 웨이터들의 숙련된 손놀림에도 불구하고, 이 날은 주문이 늦어질 수 밖에 없다. 짜증이 날 법한데도 사람들은 이곳에서 주문할 수 있는 단 두 가지 종류의 맥주-라이트와 다크-를 양손에 드는 순간,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표정이 된다. 때때로 시끌벅적함 자체의 리듬에 추임새를 넣듯, 옆에 있는 이들과 맥주 잔을 부딪히며 ‘Happy St. Paddy’s Day!’를 외치기도 한다. 20대의 젊은이들부터 몇 십 년간 이곳의 단골이었을 것 같은, 오늘은 특별히 초록색 정장 재킷을 갖춰 입은 노신사까지 모두가 한마음으로, 뉴욕의 축제로 자리잡은 성 패트릭의 날을 기념해 맥주잔을 기울인다. 다양한 인종의 현지인과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어우러진 뉴욕, 그 중에서도 맥솔리에서만큼은 모두가 아일랜드 사람이 된 듯 이날을 축하해 주는 느낌이다. 시간을 거스른 듯한 성 패트릭스의 날의 맥솔리. 이곳에선 그 느긋한 흥겨움을 한껏 느껴볼 수 있다.
김신정 반찬스토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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