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테러 용의자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옷을 모두 벗겨 사진을 찍는 등 성적 모욕을 일종의 고문 도구로 악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8일(현지시간) CIA가 추가 고문을 위해 테러 용의자를 해외로 보내기에 앞서 나체 사진을 찍은 정황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CIA가 기밀자료로 분류한 나체 사진을 보면 용의자들이 발가벗겨진 채 묶여 있으며 몸에는 멍이 들고 앞을 볼 수 없게 눈도 가려진 상태다”라며 “일부 사진에는 CIA 직원으로 보이는 인물이 함께 찍혀있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나체 사진 속 용의자들은 미국보다 강도 높은 신체 고문이 법적으로 가능한 동맹국들로 이송될 ‘특별 인도’ 대상자들이다. CIA는 고문을 규제하는 국내법의 저촉을 피하기 위해 테러 용의자들을 해외로 보내는 이른바 ‘대리 고문’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인권단체들은 클린턴 정권 이후 최소 50명이 이 같은 형태의 고문을 받아왔다고 추정한다. 가디언은 “CIA가 나체 사진을 찍는 것은 외국기관이 용의자에게 가혹 행위를 할 때 법적ㆍ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이다”라고 설명했다.
범죄 용의자 수사과정에서 미 정보기관의 인권침해 논란은 최근 반복해서 불거지고 있다. 지난 2014년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는 CIA의 테러 용의자 고문 실태를 담은 A4용지 500쪽 분량 보고서를 공개해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보고서는 CIA가 수사과정에서 용의자를 쇠고랑에 매달고 차가운 온도에 방치하는 등의 방식으로 고문해 적어도 1명이 사망했으며, 용의자 사진을 찍어 해외 정보기관에 보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보고서에는 CIA가 나체 사진을 찍었다는 표현은 없었다. 가디언은 또한 관타나모 테러범 수용소에 수감된 용의자 변호인을 인용, CIA가 현재까지 테러 용의자 나체 사진을 1만 4,000장 가량 보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쟁포로 인권을 규정한 제네바 협정 및 국제인권법은 수감장에서 용의자 사진을 찍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인도주의를 연구하는 내다니얼 레이먼드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테러 용의자 사진을 찍는 정보기관의 행위는 각종 국제협약의 위반사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원준 인턴기자(고려대 정치외교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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