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공간을 초월한 콘텐츠들이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주요 소재로 자리잡고 있다. 얼마 전 종영한 tvN 드라마 '시그널'은 무전기를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소통하며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로 탄탄한 작품성은 물론 흥행에 성공하며 시청자들로부터 '인생 드라마'라는 극찬을 얻었다.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공간을 가로지르는 '타임워프'(time warpㆍ과거나 미래의 일이 현재와 뒤섞여 나타나는 현상)가 복고 무드와 맞물리며 환영받고 있다. 안방극장에서 활용된 타임워프는 대부분 시청률에서 좋은 반응을 거두며 퇴장했다. 그러나 스크린으로 건너 오면 그렇지 못하다. 몇 안 되는 영화들이 대부분 죽을 쒔다.
■안방극장은 맑음
'시그널'에 앞서 종영한 '응답하라 1988'은 요즘 드라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훈훈한 이웃사촌, 가족애를 버무리며 세 편의 시리즈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시리즈를 관통하는 남편찾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소재로 이해할 수 있다.
한류콘텐츠의 최대 소비처 중국에서 뒤흔든 '별에서 온 그대'(별그대)도 남자주인공 도민준의 영생(永生)과 여주인공 천송이의 윤회(輪廻)가 러브스토리의 얼개를 구성했다. 극중 도민준은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으로 얼추 400년을 산 인물로 그려졌다. 드라마는 조선시대에 떨어진 도민준부터 현재의 도민준을 장면과 대사로 그려내 한국은 물론 아시아 전역에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나인:아홉 번의 시간여행'(나인)과 '인현왕후의 남자'는 이 소재를 가장 적극적으로 내세운 드라마들이다. '나인'은 남자 주인공이 2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9개의 향을 얻으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인현왕후의 남자'는 조선시대 선비와 현재의 여배우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사랑을 하는 타임슬립 로맨틱 코미디였다.
올 하반기 SBS를 통해 방송되는 '사임당, the Herstory'도 조선시대 실존인물 사임당 신씨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내용이 그려진다. 이영애의 복귀작으로 소문나 이미 회당 27만 달러(약 3억1,500만원)에 중국 수출이 팔렸다.
■스크린은 흐림
드라마와 달리 영화에서는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타임워프 영화들은 해외 영화에서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명작 '빽 투 더 퓨처'를 비롯해 '엣지 오브 투모로우', '소스 코드', '어바웃 타임', '시간 여행자의 아내', '미드나잇 인 파리',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말할 수 없는 비밀', '이프 온리', '시간을 달리는 소녀' 등등 다양한 장르에 다양한 이야기들이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 들였다.
외화들이 꾸준한 반면 국내 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다. 2013년 개봉했던 '열한시'의 누적 관객(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은 87만785명에 불과했다. 9년 전 막을 올렸던 고소영 주연의 '언니가 간다'는 고작 17만4,543명이 객석을 채웠다. 두 영화 모두 흥미로운 소재를 활용했지만 작품성에서 호응을 얻지 못해 관객 동원도 부진했다.
4월 13일 개봉하는 '시간이탈자'는 1983년의 남자와 2015년의 남자가 우연히 서로의 꿈을 통해 사랑하는 여자의 꿈을 목격하고 사투를 벌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과거의 미제살인사건을 과거와 현재에서 다루는 점에서 드라마 '시그널'의 구도와도 유사하다. 임수정 이진욱 조정석 스타들과 엽기적인 그녀의 곽재용 감독이 메가폰을 들고 있어 관심도는 높다. 하지만 앞서 타임워프 소재 영화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셨기에 '시간이탈자'를 바라보는 걱정의 시선도 존재한다.
■ 꿩먹고 알먹는 타임워프
타임워프는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그려낼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 받는 소재다. 동시대를 살았던 그리고 살아가는 대중이 추억하고 공감할 수 있는데다 어떤 장르에도 잘 어울려 콘텐츠 개발자들이 손을 댄다. 드라마는 10부작 이상의 긴 호흡 안에서 다양한 에피소드를 녹여낼 수 있어 시청자들의 입맛을 맞출 수 있다. '시그널'은 16부작 동안 어린이 유괴사건, 화성연쇄살인사건, 대도 조세형사건, 밀양 여중생 사건 등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이 재조명되며 사회적 공분의 다시 일으켰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 다뤄야 해 이야기가 확장되기 어렵다. 돈을 내고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한가지 이야기보다 뷔페처럼 먹을 게 많은 스토리가 더욱 흥미를 준다. 특이한 소재임에도 제대로 요리하지 못해 주목 받기 힘들다.
드라마 관계자들은 "시공간을 초월한 이야기들은 제작자에게 흥미로움을 유발한다. 하지만 장르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소재에만 의지하면 제작자들과 대중 모두가 외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아 기자 lalala@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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