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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첫 신소재 개발했더니… "선진국 사례 내놔야 허가"

입력
2016.03.2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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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에 효과있는 새로운 올리고당

식품기업서 찾아내 상담했지만

식약처, 외국 자료 없다며 난색

“세금으로 개발… 정부가 출시 막아”

식품소재 기업 A사는 10년 전 흙 속 미생물에서 당 성분을 분해하는 효소를 찾아냈다. 이 효소로 해조류의 다당류를 분해해 만든 올리고당은 비만이나 당뇨병의 치료와 예방 효과가 탁월했다. 이 효소와 올리고당 모두 보고된 적이 없는 신소재다. 이들을 이용해 건강기능식품 개발에 착수한 A사는 3년 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허가 상담을 신청했다. A사 대표는 선진국에서 식용으로 쓰였거나 안전성 평가를 받았던 자료를 제출하라는 설명을 들었다. 신소재인데 그런 자료가 있을 리 없다.

산업현장 곳곳에 신산업 창출을 방해하는 낡은 규정과 지침들이 여전하다. 특히 생명공학 분야에선 제도가 신기술을 따라가지 못한다.

유전자변형으로 신소재 개발 길 막혀

A사가 개발한 효소나 올리고당을 건강기능식품에 쓰려면 식품첨가물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식약처 관계자는 “신규 식품허가물 허가 절차엔 기원이나 외국 사용현황 자료를 구비해야 하는 게 지침”이라며 “그런 자료가 없을 경우엔 사유를 명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A사 대표는 “불합리하다고 건의했고, 외국 가서 개발한 다음 국내로 가져와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A사는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연구비도 받았다. A사 대표는 “정부 연구개발의 상당 부분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신소재 개발인데, 세금 들여 만들었더니 정부 절차로 제품화가 늦어지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2007년부터 해마다 5% 넘게 성장해왔고, 올해는 1,200억달러(약 14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A사는 이 시장으로 함께 진출할 외국 파트너를 찾고 있다.

한 식품소재 기업이 흙 속 방선균 연구를 통해 개발한 올리고당 신소재. 기존 올리고당과 달리 대사질환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실험 결과 확인됐다. 해당 기업 제공
한 식품소재 기업이 흙 속 방선균 연구를 통해 개발한 올리고당 신소재. 기존 올리고당과 달리 대사질환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실험 결과 확인됐다. 해당 기업 제공

생명공학기업 B사는 피부 세포를 성장시키는 단백질을 넣은 기능성 화장품을 개발중이다. 이 단백질은 노화방지용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생산과정이 까다롭다. B사는 이 단백질을 다량 만들어낼 수 있도록 유전자를 변형한 식물을 이용해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기술을 확보했다. 그런데 국내에선 이를 허가 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

수입물량 외에 국내에서 연구되는 유전자변형(GM) 식물은 유전자변형생물체법에 따라 모두 야외에서 재배돼야 한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B사의 기술은 GM 식물을 밀폐된 공간에서 키워 단백질만 뽑아낸다. 한국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 관계자는 “밀폐 공간에선 위험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감안한 심사기준으로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밀폐 공간에서 키운 GM 식물로 애완동물 치주염 치료물질을, 아이슬란드는 화장품 재료를 만들어 상용화했다. 세계 기능성 화장품 소재 시장은 연평균 6.5%씩 성장, 올해 193억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검체 못 구해 수개월째 전전긍긍

생명공학기업 C사는 비정형 폐렴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시약을 개발했다. 비정형 폐렴은 일반 폐렴과 증상이나 진행양상 등이 다르지만 구분이 어려워 적절한 치료가 늦어지면서 합병증까지 생기는 경우가 많다. C사의 진단시약은 비정형 폐렴을 조기에 판별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 그러나 개발을 마친 지 반 년이 넘도록 C사는 임상시험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시험에 필요한 객담이나 콧물 같은 환자 검체를 충분히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C사 대표는 “2, 3주면 끝낼 수 있는 임상시험이 6개월째 지연되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진단시약 제조업체들이 임상시험을 하려면 병원의 도움이 필수다. 병원에서 정해진 절차를 거쳐 제공한 검체를 써야 하고, 시험도 병원에서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큰 병원이라도 특정 질병에 걸린 검체를 수십 건 확보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이에 따라 진단시약 업체들은 헌혈된 혈액을 저장ㆍ공급하는 혈액원이나 의료기관에서 나온 인체조직을 보관ㆍ관리하는 국립중앙인체자원은행(이하 자원은행), 병원으로부터 진단검사를 의뢰받아 대행하는 수탁검사기관을 이용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입장이다. 이들 기관이 병원보다 훨씬 다양하고 많은 검체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진단시약 제조업체의 연구실에서 연구원이 신기술 개발을 위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진단시약 업계는 신제품 개발에 필요한 환자 검체를 좀더 원활하게 확보할 수 있는 길을 터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한 진단시약 제조업체의 연구실에서 연구원이 신기술 개발을 위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진단시약 업계는 신제품 개발에 필요한 환자 검체를 좀더 원활하게 확보할 수 있는 길을 터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그러나 현행 혈액관리법은 혈액원은 의약품 개발용으로만 기업에게 혈액 공급을 하도록 돼 있다. 또 자원은행은 내부 지침에 상업적 이익을 위한 연구엔 검체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규정해 놓았다. 진단시약 업체 D사 전무는 “자원은행의 설립 근거가 연구개발과 산업화를 위해 생명자원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인데, 기업의 활용을 되레 막고 있다”고 말했다. 수탁검사기관은 현행 의료법 등에서 병원이 아닌 의원으로 분류된다. 의원은 임상시험 수행기관으로 지정받을 수 없기 때문에 많은 검체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기업에겐 ‘그림의 떡’이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세계 진단시약 시장은 2013년 473억달러에서 2017년 630억달러로 급성장이 예상된다. 치료에서 예방으로 의료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성장이 가속화할 거란 전망도 있다. 협회 관계자는 “고성장 시장에선 얼마나 신속하게 진입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며 “현행 규정은 업계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고 우려했다.

이명화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산업현장 규제의 가장 큰 문제는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라며 “제도와 기술 간 불균형 해소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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