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스페인 영화인 줄 알았다. 지중해 연안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따사로운 햇살이 스크린을 채웠고, 배우들은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눴다. 호화롭지 않으면서도 풍요로운 삶이 느껴졌다. 영화 속 노인들은 사랑에 고민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일상을 향유했다. 자신의 필체로 삶을 당당히 써내려 가는 50대 여자 주인공의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지명이 등장한 뒤에야 영화 ‘글로리아’(2013)의 국적이 칠레인 줄 알았다. 중남미를 저개발 지역으로 인식하고 그들의 생활 수준도 얕잡아 보는 편견이 제대로 작동한 것이다.
얼마 뒤 영화 ‘노’를 보며 칠레 영화의 저력을 다시 확인했다. 칠레의 군사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투표로 물러나게 된 과정을 그린 작품이었다. 피노체트는 인권 탄압 등에 대한 서방의 비판과 압박을 피하기 위해 1990년 자신의 집권 지속 여부를 국민투표로 묻는다. 칠레 야권은 관권에 의해 패배가 뻔한 투표를 거부하려다 자신들의 생각을 전파할 기회라 생각하고 투표에 임한다. 한 젊은 광고 전문가가 구구절절의 정치 쟁점을 다 걷어내고 ‘아니오’(No)라는 단순하고도 선명한 구호를 만들어 내며 투표 혁명이 일어난다. 영화는 창의적인 한 개인이 고답적인 야권 지도자들을 설득해 피노체트 축출이라는 기적을 일궈내는 과정을 섬세한 세공술로 보여 준다. ‘글로리아’로 발원한 칠레에 대한 호기심이 ‘노’를 보며 호감으로 바뀌었다.
지난 세기말까지만 해도 칠레는 길고도 어둡고 눅눅한 터널처럼 인식됐다.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이 총칼을 앞세운 피노체트에게 무너진 뒤 벌어진 참혹한 일들이 칠레의 전부로 여겨지곤 했다. 축구장을 채운 시신들 사이에서 아들을 찾는 한 미국인 아버지의 고뇌(영화 ‘의문의 실종’)는 칠레를 극악의 나라로 뇌리에 새겼다. 피노체트 집권기간 3,000여명이 의문의 죽임을 당했고 1,000여명의 행방을 아직 모른다고 한다. 칠레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를 수밖에 없던 이유다. ‘글로리아’와 ‘노’를 보며 여름에는 선선하고 겨울에는 따스한, 천혜의 나라 칠레를 떠올리게 됐다. 독재자가 드리운 길고 짙은 그림자를 영화라는 빛이 걷어냈다고나 할까.
되돌아보면 한국과 칠레는 꽤 많이 닮았다. 미국의 묵인 아래 군사독재자가 오랜 시간 철권통치를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고 선거와 투표로 정상적인 민주주의를 되찾았다.
내달 7일 개봉할 영화 ‘33’을 보며 한국과 칠레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33’은 2010년 칠레에서 발생한 광부 매몰 사고를 스크린에 옮겼다. 광산 붕괴로 700m ‘지하감옥’에 갇힌 33명이 69일만에 기적적으로 생환한 과정은 칠레뿐 아니라 많은 국가가 당시 생중계하듯 전했다. 뉴스를 접할 수 있는 지구촌의 웬만한 사람들이면 알 내용을 담아낸 영화는 그럼에도 흥미진진하고 가슴 찡했다.
아마 2014년 4월 16일 이전에 이 영화를 봤다면 좀 심드렁했을지 모른다. 관계 장관이 현장에서 구조를 독려하고,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구조 활동을 챙기는 모습이 너무나도 당연해 보였을 것이다. 어쩌면 정치인들의 쇼맨십이라고 낮게 평가했을 수도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세월호 참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광부들이 고통의 시간을 견뎌낸 뒤 구조된 순간보다 거리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칠레 국기를 흔들며 ‘비바(만세) 칠레’를 외칠 때 가슴이 더 뭉클했다. ‘만약에’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이내 마음은 무거워졌다. 매몰 광부의 한 가족이 장관의 뺨을 때리며 악다구니를 쓸 때 장관이 묵묵히 받아들이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극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극단적 행동까지 쉽게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곳의 우울한 풍경이 자연스레 겹칠 수밖에.
‘33’을 본 뒤 칠레를 살아 보고픈 나라로 생각하게 됐다. 그리스에선 ‘건너편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인다’고 하고, 한국에서는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하는데 그래도 지금 이곳에선 내겐 너무 매력적인 칠레다.
라제기 엔터테인먼트팀장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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