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내가 대표팀에 또 뽑힐 거란 생각은 1%도 안 한다.”
남들은 ‘슈틸리케의 황태자’라 부르지만 이정협(25ㆍ울산 현대)은 태극마크가 본인 거라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는 “대표팀에 꾸준히 부름 받는 선수가 목표다”고 자세를 낮췄다. 작년 1월 호주 아시안컵에서 2골을 넣으며 스타덤에 올랐다가 그 해 8월 안면 골절 부상으로 한동안 대표팀에서 멀어졌던 이정협은 “대표팀에 안 뽑히니 쉽게 잊혀지더라. 알아보시는 분들도 거의 없었다”고 웃음지었다. ‘황태자’란 별명에 대해서도 “내가 그렇게 불릴 선수 인지 정말 모르겠다. 부담은 되지만 열심히 하는 계기로 삼으려 한다”고 솔직히 말했다. 태국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이정협을 28일 인천국제공항 근처 커피숍에서 따로 만났다.
7개월 만에 복귀해 결승골
한국은 지난 24일 레바논과 2018 러시아 월드컵 2차 통합예선 7차전(1-0 승)을 치르고 방콕으로 넘어가 27일 태국과 평가전(1-0승)을 소화했다. 작년 8월 이후 7개월 만에 부름을 받은 이정협은 “대표팀에 처음 뽑혔을 때와 느낌이 비슷했다. 긴장하고 걱정도 컸다”고 털어놨다. 다행히 기대에 부응했다. 레바논전 때 후반 중반 교체로 들어가 종료직전 극적인 결승골을 터뜨렸다. 그는 “(기)성용 형이 돌파할 때 수비가 앞으로 쏠려서 형이 뒤로 내주면 바로 슛을 때릴 수 있겠다 싶었는데 실제 그렇게 됐다”고 웃었다.
석현준(25ㆍ포르투)과 투 톱 선발로 나선 태국 원정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석현준은 결승골을 넣었지만 이정협은 완벽한 헤딩 찬스를 놓치며 무득점에 그쳤다. 그는 “냉정히 말해 레바논전도 득점 말고는 좋은 플레이가 아니었다. 태국과 경기는 날씨가 덥고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잘 못했다”고 인정했다. 태국전에서 이정협은 익숙하지 않은 사이드 공격수를 수행했다. 하지만 그는“어느 자리든 감독님 주문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핑계를 대지 않았다.
일본, 이란 두렵지 않아
모든 축구선수들이 국가대표를 동경한다. 어린 시절 이정협도 그랬다. 하지만 철 들고 나서 생각을 바꿨다. 그는 “어느 순간 국가대표는 마음에서 지웠다. 프로에서 꾸준히 뛰는 걸 목표로 삼았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은 더 큰 꿈을 꿀 수 있는 위치다. 바로 월드컵이다. 2차 통합예선을 7전 전승으로 통과한 한국은 9월부터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에 들어간다. 12팀이 두 조로 나눠 겨룰 최종예선에서 조 2위 안에 들면 러시아로 간다. 이정협은 “선수라면 당연히 월드컵은 가고 싶다. 하지만 마음만으로 안 된다는 걸 잘 안다. 중요한 건 소속 팀 활약이다. K리그에서 더 많은 골을 넣고 더 좋은 모습을 보이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최종예선은 쉽지 않은 행보가 될 전망이다.
4월 12일 예정된 최종예선 조 추첨은 4월 7일 발표될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을 토대로 한다. 아시아에서 랭킹이 가장 높은 두 팀만 톱 시드를 받는데 이란이 한 장을 가져가고 나머지 한 장은 호주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차지가 될 확률이 높다. 이 경우 한국은 이란, 일본과 한 조에 속할 가능성도 있다. 이정협은 “아시아에서는 모든 팀이 한국을 두려워할 거다. 최종예선에서는 강팀, 약팀이 따로 없다. 우리가 잘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숙적’ 일본과 이란을 향한 승부욕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대표팀에서 한 번도 두 팀과 맞대결한 적이 없다. 이정협은 “일본과는 한 번 붙어보고 싶다. 만약 같은 조가 되면 절대 지지 않겠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인천국제공항=윤태석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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