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골목을 걷고 있었다. 날씨는 화창했다. 정면에서 웬 늘씬한 여성이 양쪽에 젊은 남자 둘을 대동한 채 다가오고 있었다. 키가 얼추 180센티는 돼 보였다. 가늘고 긴 다리에 타이트한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양쪽 남자들이 상대적으로 추레해 보일 정도로 화려한 외양이었다. 지극히 평범하고 서민적인 이 동네에선 쉬이 볼 수 없는 캐릭터였다. 나도 모르게 눈이 갔다. 여성의 시선 역시 나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양 옆 남자들의 입귀도 짓궂게 실룩거렸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잠깐. 서로 엇갈리면서 껑충껑충 지나치는 여성의 얼굴을 정확히 봤다. 남자였다. 화장을 짙게 하고 풍성하게 웨이브 진 머리를 추켜세우고 있었으나 남자가 분명했다. 트랜스젠더나 트랜스베티트들을 본 적 없는 건 아니지만, 노년 인구가 많고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변두리 빌라촌에서 한낮에 마주치는 건 처음이었다. 얼핏 놀라는 눈빛을 그들이 봤나 보다. 화장품 냄새를 강렬하게 흩뿌리고 지나는 등 뒤에서 ‘남자’ 셋이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껄렁껄렁한 태도로 보건대 사람들이 당혹스러워하는 걸 즐기는 이들 같았다. 기분이 묘했다. 해 아래 자신의 정체성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게 그저 장난에 불과했을까. 나도 그들도 별로 웃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만, 놀랄 정도로 예뻐 보였을 뿐이니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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