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산타렝에서 아마존의 끝 벨렝까지 지긋지긋한 사람 냄새
※혼돈의 선박에서 명당자리 잡기, 아마존 여행2에서 이어짐.
두 번째 아마존 선박 여행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출정 전날 같았다. 매트리스에서 과도하게 휴식을 취하거나 사막 동물마냥 지방을 비축하는 습관이 생겼다. 무엇보다 해먹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위협으로까지 다가오는 잉여의 시간에 어찌 대처할지 분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존의 끝, 벨렝행의 시작이다. 선박 타는 것에는 이골이 났다. 낯선 터미널, 다른 선박일지라도 익숙해졌다.
그러나 풍경이 몹시 낯설었다. 선박 내 우리의 자리는 어디인가? 세상의 해먹이 총 집합했다. 승객의 취향도 제각각, 휘황찬란했다. 커플용 퀸사이즈 해먹부터 술 달린 해먹, 군용 해먹 등 구경만 해도 반나절 코스였다. 결국, 해먹 자리로선 최대 실격인 화장실과 부엌 바로 옆에 자리 잡았다. 사람들과 전쟁터처럼 부딪힐 수밖에 없는 이 위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재난에 가까워졌다. 잠시 눈을 붙이고 나면 다른 해먹이 옆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고, 하룻밤을 보내면 해먹 위로 또 다른 해먹이 대롱대롱 달려 심장마비를 일으키기 십상이었다.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 경제의 원조는 이 아마존의 선박이로구먼! 모두 타인의 삶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열린 구조였다. 눈 뜨자마자 본인의 도시락을 챙겨 먹던 한 식구의 어미가 물었다. “어이, 눈 찢어진 여자야, 한 숟갈 할 텨?” 온전한 나만의 공간은 약 0.5평이었다.
이번에 탄 N/M Amazon star 선박은 과거로 돌아간 듯했다. 한마디로 '후졌다'. 현존하는 보트 중 최고령으로 짐작되는 벗겨진 페인트가 기본이었는데, 욕실 겸용 화장실이 화룡점정이었다. 좁디 좁은 공간은 새로 입을 옷을 적실 각오를 해야 했다. 옷을 갈아입다가는 사람이 변기에 빠지든, 옷이 변기에 빠지든 둘 중 하나였다. 선박 내 안내는 '국민학교' 시절의 종과 선원의 육성으로 대치되었다. 좁고 낮고 열악했다. 흥미로운 것은 브라질 여행 14일째, 이 선박에서 데면데면한 브라질리언의 삶에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는 점이다. 습도 높은 항해가 이어지는 내내 난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 사람들아, 그 동안 어디 숨어 있었어?
선박은 출발하자마자 Meeting of Waters를 통과하고 있었다. 섞이면서도 섞일 수 없는 애증의 두 강은 이제 3선마저 그리고 있었다. 나의 시선은 앞을 보고 있었지만 뒤통수가 따가웠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한 여인의 눈동자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주시레이아(이하 주). 돌아서자마자 느닷없이 맥주를 건네 합석으로 이어졌다. 이때부터 언어가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모든 행위가 아마존의 공기를 갈랐다. 하늘을 휘휘 젓고, 손 그림을 그리고, 서바이벌 포르투갈어가 난립했다. 고백하건대, 부딪히는 술잔의 웃음 뒤로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닐지 내내 의심했다. 깍듯한 접대를 받을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그 사이, 낮에 얼굴을 익힌 한 선원이 식사 접시를 쓱 건네더니 시크하게 돌아서갔다. 이건 또 무슨 속셈이란 말인가. 대낮부터 브라질리언과 겉치레 스텝을 밟는 사이, 주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귓속에 대고 속삭였다.
"넌 우리의 아미고(포르투갈어로 친구)니까. 브라질에 온 것을 환영해!"
전날 브라질 사기꾼에게 호되게 당한 이 속물을 무장해제시킨 언어였다.
43시간의 항해, 6번의 정거가 이뤄질 아마존 오디세이. 선박은 좀 더 깊숙이 아마존 강을 비집고 들어가고 있었다. 아마존이 깊어지자 배에 탄 승객을 대상으로 한 장사꾼도 전문화(!)되어 갔다. 산타렝-벨렝 구간은 방문 판매의 모범 답안이었다. 식사 대용 도시락부터 아이스크림, 빵 등 간식거리까지 분업화한 장수가 선박을 제집인 양 드나들었다. 탕탕은 이제껏 등한시했던 길거리 쇼핑을 득도한 듯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면 빵 봉지가 무릎 위에 있고, 빵을 해치우면 바나나 칩이 입에 물려 있었다.
화려한 상행위 퍼레이드 가운데 '레전드'라 할 만한 장면도 있었다. 카누를 몰고 시속 20km 속력의 선박을 따라잡는 인디오 상인이었다. 이들은 아마존 밀림용 카누를 달리는 선박에 묶어 뛰어난 운동신경을 뽐내며 선박 위로 올라탔다. 세상에서 가장 극적이고도 위험한 방문 판매였다. 싱싱하게 튀긴 새우를 팔던 소녀는 손님이 떨어지자 반대편에서 오는 선박을 낚아챘다. 그녀는 세계 최장이자 최다 수량의 아마존 물살을 손아귀에 올려 둔 아마존 부처였다.
묘기에 가까운 인디오 상인에게 갓 뗀 시선은 이제 여러 척의 카누가 선박으로 진격하는 광경으로 가 있었다. 카누를 모는 인디오의 평균 연령은 대략 4~5세. 아마존에 기대 사는 인디오는 걸음마 이전에 카누 타는 법부터 배우는지도 모르겠다. 아마존 카누 군단의 목적은 환영 인사 아니면 도시인 구경. 일부 승객들은 도시와 단절된 삶을 택한 인디오에게 구호물품인 검은 비닐봉지를 던졌다.
아마존은 어느새 호수가 되었다. 거룩한 고요함이 선체를 감싸고 미는 느낌이었다. 선박은 엔진이 멈췄다고 느낄 정도로 속도를 낮추고, 아마존의 풍경에 잠입해갔다. 승객 모두 그들의 삶에 방해꾼이 되지 않으려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었다. 보뚜(아마존강 핑크 돌고래)와 투칸, 거미원숭이는 철저한 조연이었다. 현재 브라질 땅에 거주하는 인디오 중 가장 오래된 전통 부족이 이 아마존을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다.
수로가 넓어지자 선내로 시선을 틀었다. '해먹 우림'이 된 선내는 여러 주인공이 등장하는 옴니버스 영화 같았다. 동판 위에 유화 물감을 다섯 손가락으로 펴내며 아마존을 그리던 아티스트와 다리 부상 후 전기구동차를 타고 전 세계를 여행 중인 베네수엘라 출신 이스마엘, 생판 모르는 이방인을 집으로 덜컥 초대한 주와 데이비지 커플, 한 달 60만원의 박봉 근로자라면서 껄껄 웃던 콧수염 선장…. 인디오와 더불어 여러 형태의 삶을 보았고, 그 인생을 단기 습득한 기분이었다. 잠시 다른 삶에 조려졌다고나 할까. 든든하고 가능성이 충전된 기분이었다. 어디에서 굶어 죽을 일도 없고, 뭐든 못할 게 없다는 희망. 한 번뿐인 인생, 우린 전혀 다른 형태의 삶을 살 수도 있다.
"모닝!!! 오늘도 아름다운 날이야!" 이스마엘의 낙천적인 아침 인사 뒤로 공장의 굴뚝 연기가 자욱한 도시, 벨렝이 보였다. 브라질 타바팅가로부터 3,252km 떨어진 이곳, 이제 아마존 강을 떠날 시간이다. 대신 해먹에 누울 때마다 아마존과 그곳에 사무친 인생을 떠올릴 것이다. We are the world. 그건 혼자뿐인 인생이라도 결코 외롭지 않다는 멋진 포옹이었다.
100% 경험치 아마존 선박 요점 정리
타바팅가에서 벨렝행은 대서양으로 빠지는 아마존 하류로 가는 순방향이다. 역으로 벨렝에서 타바팅카로 향한다면, 소요 시간을 2배로 잡아야 한다. 아마존에 뼈를 묻을 각오를 해야 한다. 잔잔해 보여도 아마존 물살의 파워가 여기 있다. 현재 환율 1브라질헤알(BRL)=약318원
여행의 선물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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