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경 편의 위해 기차역 근처 물색
반년 만에 십시일반 후원금 3억원
서울지하철정규직노조 기부 큰 힘
“연대ㆍ소통 거점으로 만들 터”
비정규직 문제를 널리 알리고 서울에서 노동 쟁의를 하는 지방의 비정규직들이 쉴 수 있는 이른바 비정규 노동자의 집이 정규직들의 후원으로 8월 서울에 지어진다. 하지만 얼른 비정규직이 없어져 문을 닫는 게 이 집을 세우려는 사람들의 바람이다.
27일 노동계에 따르면 근무지가 지방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에 머무는 동안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비정규노동자의 집’이 8월 문을 연다. 장소는 교통이 편리한 기차역 근처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만들어진 추진위원회가 현재 서울역ㆍ용산역ㆍ영등포역 인근에서 적당한 주택을 찾고 있다. 2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마당 딸린 2층 단독 주택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다음달까지 구매한 뒤 1개 층을 더 올릴 계획이다. 운영비는 자동이체(CMS)로 후원을 받을 예정.
이 집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숙소 및 쉼터로만 쓰이는 게 아니다. ▦노동 문화운동을 위한 아카데미 ▦비정규ㆍ미조직 노동자 대상 노동 교육장 ▦노동자ㆍ활동가 사이 소통 공간 등으로 쓰인다.
비정규직의 집을 짓자는 아이디어는 2014년 말 ‘기륭전자 비정규노동자 투쟁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나왔다. 참석자들 모두 천막과 컨테이너에서 조합원들이 풍찬노숙하며 5년 넘게 싸웠던 기륭전자 조합원들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 이듬해 7월 공식 제안되면서 계획은 급물살을 탔다.
지난해 8월부터 반년여 만에 3억원 가까운 후원금이 걷혔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서울지하철노조다. 이들은 통상임금 소송에서 이겨 생긴 돈의 일부인 3,750만원을 지난달 기금으로 내놨다. 외환위기 이후 정규직ㆍ비정규직 간 연대보다는 불화와 반목이 흔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이 노조 소속인 황철우 추진위 집행위원장은 “단위사업장 정규직 노조가 조직 차원에서 비정규직을 위한 별도 기금을 만든 건 처음”이라고 전했다. 앞으로도 추진위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 위주로 후원을 요청할 계획이다. 후원금 중 4,700만원은 온라인에서 십시일반했다. 지난해 11월부터 포털 사이트 다음의 스토리펀딩(특정 프로젝트에 대한 대중 모금)으로 3개월 간 모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경 투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동양시멘트 하청 노동자들은 지난해 잇달아 위장도급과 부당해고 사실이 인정됐는데도 복직하지 못하고 고향 강원 삼척시를 떠나 7개월 넘게 동양시멘트를 인수한 서울 수송동 삼표그룹 본사 앞에서 노숙 농성 중이다. 기륭전자 노조 위원장 출신인 김소연 추진위 공동운영위원장은 “지금껏 거리에서 어렵게 싸우면서도 변변한 공간이 없어 빨래 한 번 편하게 하지 못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소중한 공간이 생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제안자 중 한 사람인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라져 비정규노동자의 집이 필요 없도록 연대 정신을 회복하자는 것이 이 프로젝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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