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옥새투쟁’에 온 국민의 시선이 쏠려 있던 24일 세아제강 해고 노동자 김정근씨가 서울 양화대교 아치 위에 올라 ‘세아제강 해고자를 복직하라’는 현수막을 펼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1985년 스물아홉 살 때 세아제강의 전신인 부산파이프에서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하다 해고된 그는 블랙리스트(감시명단)에 올라 다른 회사에도 취업하지 못한 채 환갑이 돼버렸다.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가 2009년 해고가 부당하다며 복직을 권고했지만 회사가 거부해 일을 할 수 없었다.
▦ 김씨는 이날 회사 측이 복직 협상을 재개하겠다고 하자 농성 4시간 만에 내려왔다. 그런 김씨와 달리 지금 서울시청 옆 옛 국가인권위원회 전광판 위에서는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최정명씨와 한규협씨가 300일 가까이 농성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이 전광판에 오른 것은 지난해 6월11일이다.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기아차에 직접 소속돼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소송을 내 2014년 9월 1심에서 승소했는데도 회사 측이 비정규직 일부만 정규직으로 채용키로 한 데 반발해 전광판 위로 올라간 것이다.
▦ 전광판 위 좁은 공간에서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낸 두 사람은 이제 봄도 그곳에서 맞을 판이다. 여름의 전광판이 뜨거운 불판이었다면 겨울의 전광판은 거대한 얼음 덩어리였다. 눈과 서리가 내려 미끄러워지면 수십m 아래로 떨어질 수 있으니 특히 조심스러웠다. 거센 바람도 무섭고 플래카드를 폈다가 걷는 것도 힘이 든다. 잠은 침낭에 핫팩을 넣고 전광판 아래 계단에서 잔다. 버스를 타고 출근할 때 전광판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두 사람이 그 위에 서서 서울광장의 분주한 출근길 모습을 내려볼 때가 많다.
▦ 두 사람은 자신들이 ‘하늘감옥’에 갇혀있다고 말한다. 이들처럼 하늘감옥에 갇히거나 노숙농성을 하는 노동자가 의외로 많다. 사용자는 사용자대로 할말이 있겠지만 절실하고 분하기가 이들만큼 하겠는가. 최정명씨와 한규협씨는 “올라올 때는 비정규직이었지만 내려갈 때는 정규직이 되겠다”고 했다. 사측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고공 체류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파견법이 개정되면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파견 노동을 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오늘도 위험한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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