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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뼛속까지 슈퍼갑" 권력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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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뼛속까지 슈퍼갑" 권력에 취하다

입력
2016.03.2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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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해욱(48) 대림산업 부회장이 운전기사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재벌들의 '갑(甲)질'이 또다시 입방아에 올랐다. 이 부회장은 "제 잘못으로 상처받은 모든 분들께 용서를 구한다"고 사과했지만 수 많은 ‘을’들의 분노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땅콩회항','라면상무','신문지회장님'까지 슈퍼 갑(甲)들의 독선은 왜 계속 되풀이 되는 걸까. 갑의 심리를 알아봤다.

안하무인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의 횡포를 다뤄 인기를 얻었던 영화 '베테랑'.
안하무인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의 횡포를 다뤄 인기를 얻었던 영화 '베테랑'.

혼자만의 도덕 체계가 곧 갑의 특권의식

'갑질'은 권력관계에서 강자인 갑이 힘 없는 을에게 부당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갑을 관계에서 오는 갈등은 가정·학교·직장·사회 등 강자와 약자가 있는 곳이면 도처에서 볼 수 있다. 더러 어떤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갑과 을이 바뀌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안하무인 식으로 행동해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사는 슈퍼 갑은 '갑 중의 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아론 제임스 철학과 교수는 저서 '그들은 왜 뻔뻔한가'에서 슈퍼 갑을 '골칫덩이(Asshole)'라고 칭하며 이들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소개했다.

제임스 교수에 따르면 골칫덩이들의 '갑질'은 마땅히 누릴 것을 누리고 있다는 특권의식에서 나온다. "나는 특별하다"는 특권의식이 사회적 통념을 기반으로 한 도덕성에서 벗어나 혼자 만의 도덕 체계를 만든다.

이를 바탕으로 타인을 자연스럽게 무시하고 타인의 불만을 무감각하게 넘긴다. 제임스 교수는 "골칫덩이들의 특권 의식은 평등한 존재로서 도덕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일반적 의식과 충돌하기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뇌의 분비물질을 활성화시키는 권력중독

그렇다면 "나는 특별하다"는 특권의식은 어떻게 싹트는 것일까. 뇌신경 심리학자인 이안 로버트슨 아일랜드 트리니티칼리지 교수는 저서 '승자의 뇌'에서 권력을 쥐면 사람의 뇌가 바뀐다고 주장했다. 로버트슨 교수는 "성공을 경험하면 혈중에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활성화돼 화학적 도취 상태가 된다"며 "산악인이 보다 높고 위험한 코스를 찾는 것처럼 더 큰 쾌감을 얻기 위해 더 큰 승리를 갈구한다"고 말했다.

김병수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이 곧 '권력중독'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도파민으로 얻는 쾌감은 술이나 마약, 섹스 등으로 얻는 것과 같다"며 "시의원이 되면 국회의원을, 국회의원이 되면 대통령이 되고 싶은 욕구는 여타 중독증세의 전개양상과 같다"고 했다. 이는 곧 알코올이나 마약 중독처럼 내성과 금단증상을 수반한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권력에 중독된 사람들의 경우 목표달성이나 자기 만족에만 집중해 공감능력이 떨어진다고 봤다. 그는 "권력에 도취될 때 나타나는 뇌의 호르몬 변화로 타인의 감정을 읽고 재구성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과 섬엽의 거울뉴런 기능이 저하된다"며 "이는 극단적 자기중심성을 보이는 사이코패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과 같다”고 설명했다. 권력에 도취한 갑들이 충동적이고 뻔뻔해지며 독선적으로 변할 수 있는 이유다.

갑과 을 사이의 갈등은 권력관계가 작동하는 모든 곳에서 일어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갑과 을 사이의 갈등은 권력관계가 작동하는 모든 곳에서 일어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슈퍼갑에 대처하는 을의 자세

권력중독 증세에 빠진 갑은 종종 을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게 된다. 업무적 성과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감정적 배려조차 하지 않는다. 이 같은 을에 대한 갑의 배려심 실종은 시간강사의 강의료를 착취한 교수, 가수지망생에게 대출을 강요한 연예기획사 사장, 골프장 캐디를 성추행한 권력자 사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당하고만 살 수는 없는 일,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슈퍼 갑이 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제임스 교수는 저서에서 “골칫덩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결국 ‘만인 대 만인’의 경쟁만 남는 비극적 상황에 놓일 수 밖에 없다”며 갑의 횡포에 무관심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권력자 스스로가 자신의 공감능력에 대해 자문자답하고 주변사람들의 평가에 귀를 기울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을이 보다 적극적으로 의사를 갑에게 개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갑질 사태에 대한 을의 폭로는 모두 울분을 참다가 곪아 터진 것"이라며 "폭력의 수위와 빈도는 갈수록 높아지기 때문에 피해를 줄이려면 을도 단호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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