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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들에게 봄이란... ‘토요 고문’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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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들에게 봄이란... ‘토요 고문’의 계절

입력
2016.03.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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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ㆍ야유회 등 사내 행사 몰려

“부장ㆍ과장 다 나와… 빠질 수 없어”

“토요일 하루쯤은 희생해도 된다”

특유의 한국식 문화가 갈등 불러

KBS 드라마 ‘직장의 신’의 한 장면
KBS 드라마 ‘직장의 신’의 한 장면

4년 차 직장인 최모(32)씨는 4월만 되면 ‘토요 고문’에 시달린다. 매년 5월 열리는 직장인축구대회를 준비하느라 토요일 전부를 사내 동료들과 축구 연습 시간으로 보내야 한다. 최씨가 더 괴로운 건 그가 늘 ‘벤치 멤버’라는 점. 최씨는 25일 “어차피 경기에 뛰지도 못하고 박수부대 역할밖에 못하지만 부장, 과장이 전부 참가하니 빠질 수도 없다”며 “토요일마다 이등병 생활을 다시 하는 기분”이라고 한숨을 내뱉었다.

낮 기온이 20도까지 오르는 등 완연한 봄 날씨가 지속되고 있지만 미생들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ㆍ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의 심정이다. 춘계단합대회, 야유회, 워크숍 등 본격적인 사내 행사의 계절이 돌아온 탓이다. 평일 내내 간과 쓸개를 다 빼주고 토요일마저 직장에 헌납하라니. 미생들의 마음에 봄이 오지 않는 이유다. 주5일제가 산업계 전반으로 퍼진 지 10년을 훌쩍 넘겼지만 ‘토요일 하루쯤은 조직 내 화합을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경직된 기업 문화에 젊은 직장인들은 쉴 권리를 빼앗기고 있다.

오래 전 ‘불금(불타는 금요일)’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생활 패턴이 변화했으나 주6일제의 구태는 사내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오는 6월 1박2일 사내 워크숍이 잡혀있는 박모(28ㆍ여)씨는 “상사들은 늦게까지 먹고 마시고 합숙까지 해야 화합이 된다고 주장하지만 과연 그 자리가 진심으로 즐거울 사람이 누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같은 월급쟁이끼리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토요일 하루를 온전히 투자해야 단합대회 같다는 상사와 당일치기로 충분하다는 부하 사이의 의견 충돌이 오히려 조직 화합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직장 내에 만연한 주말 인력 동원은 스트레스의 주범이다. 취업포탈 잡코리아가 지난해 11월 749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직장인들은 사내 행사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가장 큰 이유로 ‘주말 시간을 회사 행사로 써야 할 때(60.9%)’를 꼽았다. ‘참석 여부를 선택할 수 없다’는 응답도 절반(47.6%)에 가까웠다. 행사 참여 여부까지 고과에 포함될까 두려워 울며 겨자 먹기로 출근 도장을 찍고 있는 셈이다.

각종 주말 행사가 놀이문화 형태를 띠고 있지만 결국 업무 시간의 연장일 뿐이라는 불만도 적지 않다. 김모(34)씨는 지난주 회사에서 주최하는 걷기 대회 행사에 참여하는 바람에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못했다. 김씨는 “토요일 아침 일찍 걷기 운동을 한 것까지는 좋다 쳐도 행사 이후 오후 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로 하루를 통째로 날리고 피로만 쌓였다”고 푸념했다.

게다가 행사 프로그램마저 상사 기호에 따라 획일화해 사내 분위기를 망치는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회사원 윤모(28ㆍ여)씨는 매년 등산으로 시작해 술 자리로 끝나는 단합대회에 혀를 내두른다. 윤씨는 “어차피 쉬는 시간을 뺏길 바에야 힐링캠프나 템플스테이처럼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아이디어를 냈으나 전부 거절 당했다”고 말했다.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토요 고문은 상명하복과 희생 강요 등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한국 특유의 조직 문화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최근 한 대학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워크숍을 왜 금ㆍ토요일로 가느냐고 부서장에게 물어봤다가 토ㆍ일요일이 아닌게 다행 아니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단합을 빙자한 이런 사내 모임이 구성원들의 사기를 꺾어 일과 삶의 균형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려는 원래 취지를 거스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근로시간 단축과 일ㆍ가정 양립 정착 등 제도는 앞서 갔지만 지금도 일터에는 조직 우선주의, 집단 동원문화가 남아있다”며 “기업 수뇌부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제도와 문화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성과도 따라올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현주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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