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 넛지?
캐스 선스타인 지음ㆍ박세연 옮김
열린책들 발행ㆍ232쪽ㆍ1만5,000원
미국의 법학자 캐스 선스타인의 ‘와이 넛지?’는 정부와 시장간 국경선에 파견된 일종의 정찰대다.
정부와 시장간 영역 다툼은 오래된 싸움이다. 예상과 달리 이는 경제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정치의 싸움이다. 경제를 다루는 사람들은 정부와 시장의 영역은 뒤섞여 있으며 중요한 건 양측간 균형이라는 점에 모두가 동의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정부가 눈만 끔뻑해도 전체주의가 의심된다고 호루라기 불어대는 하이에크식 자유시장론이다.
영국 타임스 편집장으로 오랜 기간 동안 양측 논쟁을 지켜봐온 니컬러스 웝숏이 ‘케인스 하이에크’(부키)에서 “하이에크를 영웅시 하는 두 부류가 있는데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과 대기업을 좋아하는 경제학자”라고 비꼬았음에도, 하이에크식 자유시장론은 끈질기게 살아남을 뿐 아니라 때로 대단한 승리를 거두는 것처럼 보인다. 이유는 그 주장이 경제가 아닌 정치의 영역에서 아주 유용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파시스트 혹은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데 ‘반시장적’이란 정치구호만큼 잘 먹혀 드는 게 또 있던가.
‘와이 넛지?’에 등장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뉴욕시장 마이클 블룸버그는 2012년 탄산음료 병 규격을 최대 16온스(450g)로 제한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저소득층이 정부에서 받은 식량배급표로 탄산음료는 살 수 없도록 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또 소매점에서 담배를 눈에 띄는 곳에 배치하는 것도 금지했다.
이런 조항들이 노린 바는 명백했다. 건강에 좋지도 않은 탄산 음료를 단지 병마개를 땄다는 이유로 한 병 다 마시게 내버려두지 않겠다, 저소득층이 기껏 구해오는 먹을 거리가 정크 푸드가 되는 것을 막겠다, 가게가 앞장 서서 담배를 미리 권하는 모양새가 되는 건 피하겠다는 의미다.
블룸버그의 이런 정책은 거센 비판에 시달리다 좌절됐다. ‘소비자 자유’를 외치는 단체들은 블룸버그 얼굴을 나이든 아줌마의 몸에다 합성한 뒤 잔소리쟁이 ‘유모’(Nanny)라 비아냥댔다. 블룸버그 코 밑에다 히틀러나 스탈린식 수염을 붙이지 않은 게 다행일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 사례를 구글의 구내 식당과 비교했다. 처음엔 영양만점 음식을 제공하는 그냥 구내식당이었다. 그러다 이내 알아챘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붙어 일하고,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이들에게 영양만점 음식이란 곧 독약이라는 것을. 해서 음식 구성을 완전히 바꿨다. 야채 위주로 칼로리가 낮은 가벼운 식단, 쉽게 말해 먹는 재미가 뚝 떨어지는 메뉴들을 전진 배치했다. 저자는 되묻는다. 구글은 직원 건강을 최우선으로 배려하는 최첨단 IT 기업이라 박수 받는데, 왜 블룸버그는 사회주의자로 의심되는 잔소리쟁이 할멈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넛지’는 요즘 유행인 행동경제학, 경험적 발견법(휴리스틱ㆍHeuristic) 등과 함께 움직이는 개념이다. 모든 변수를 다 감안해 순식간에 자신의 이익과 손해를 계산해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경제학적 인간 따윈 현실에 없다. 그 대신 존재하는 건 때론 멍청하고, 때론 게으르고, 때론 어이없는 실수도 하며, 때론 뻔히 다 알면서도 대충 때우고 넘어가는 평균적 인간들 뿐이다. 자학하거나 비관할 필요는 없다. “비합리성이라기보다는 제한적 합리성”이 인간의 조건이다.
이 주장으로 대니얼 카너먼은 심리학자임에도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의 책 ‘생각에 관한 생각’(김영사)이 행동경제학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이유다. 그러나 이 책에서 카너먼은 심리학에만 집중한다. 이 선을 넘어선 이가 ‘와이 넛지?’의 저자다. 그는 2008년 내놓은 책 ‘넛지’(리더스북)에서 인간은 제한적 합리성을 가진 존재이기에 합리적 시장을 위해 세심한 정책 설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게 팔꿈치로 슬쩍 찌른다는 ‘넛지’다. 이 책을 낸 뒤 저자는 오마바 정부에 들어가 정책 설계에 실제 관여하기도 했다.
‘와이 넛지?’는 그 이후, 그러니까 실제 정책 경험까지 곁들여진 책이다. 그래서 주요 포인트는 정책 수립, 시행 과정에서 맞닥뜨렸던 사람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데 맞춰져 있다. 넛지가 유발하는 불안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개입주의에 대한 공포다. 개입주의라 번역했지만 원어는 ‘Paternalism’이다. 그냥 개입이 아니라 가부장 냄새까지 물씬 풍기는 표현이다. 또 하나는 ‘심리 국가’에 대한 반감이다. 넛지가 설사 우리에게 이롭다 하더라도 팔꿈치로 쿡 찌른다는 건 결국 ‘대국민 심리전’을 벌이겠다는 수작 아니냐는 비판이다.
저자는 설득에 최선을 다한다. 법학자 특유의 논리성을 발휘해 개입주의를 강력한 개입주의와 온건한 개입주의, 목적 개입주의와 수단 개입주의 등으로 세분화한 뒤 넛지는 강요나 억압과 완전히 다르다고 해명한다. 또 정부냐 시장이냐는 이분법에 대해 “범주를 양분하는 관점이 아니라 스펙트럼의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설득해나간다. 금연을 위해 만들 수 있는 정책 모델을 14가지나 제시하면서 어느 정도면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 어느 모델엔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짚어나가기도 한다. 하이에크식 자유시장론에 대해서도 웝숏 같은 지식인들이 조롱하는데 그쳤다면, 저자는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며 한껏 머리를 조아린다.
이 때문에 의외로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넛지를 둘러싼 논쟁 자체보다 저자의 이런 성실한 태도다. 역대 주요 정책입안자들 가운데 자기는 억울하다고 하소연하거나 내가 그거 다 했다는 자화자찬 늘어놓는 것 말고, 이렇게 간곡하게 차분히 설명하는 책을 써낸 이가 얼마나 될까. 넛지 저자라 제대로 넛지하는 것 같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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