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임원 “권위주의 타파” 선언
사원~부장 직급 체계 단순화하고
눈치보기 잔업ㆍ주말 특근 줄이기로
이 부회장 지휘… 체질 개선 본격화
창립된 지 47년, 직원 수 30여만명의 대기업 삼성전자가 자유롭게 소통하는 창의적인 신생 창업 기업(스타트업)으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했다. 형식보다 실용을 강조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물리적인 사업 구조 재편에 이어 인사와 조직 문화 혁신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24일 경기 수원시 디지털시티에서 윤부근(가전 부문) 신종균(휴대폰 부문) 대표 등 임직원 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스타트업 삼성, 컬처혁신 선포식’을 열었다. 이날 선포식은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권위주의적 방식과 관행을 타파하고, 스타트업처럼 활력이 넘치고 발 빠르게 대응하는 기업 문화로 혁신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를 위해 ▦수평적 조직문화 구축 ▦업무 생산성 제고 ▦자발적 몰입 강화 등 3대 전략을 제시했다. 실제로 이날 모든 임원들은 “권위주의 문화를 타파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현재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으로 이뤄진 직급과 호칭은 단순화된다. 연공서열에 관계 없이 서로를 ‘~님’ 혹은 ‘~프로’로 부르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부서를 팀 단위로 쪼개는 등 직무와 역할 중심으로 인사 제도도 개편하기로 했다. 또 사내 아이디어 공유 인터넷망인 ‘모자이크’에서 이뤄지는 토론에 임원들도 적극 참여, 수평적 소통의 기회도 늘려나갈 계획이다.
업무 생산성 제고를 위해서는 비효율적 회의와 보고 문화가 중점 개선된다. 불필요한 회의의 절반을 통합하거나 축소하고, 동시ㆍ실무ㆍ간단(심플) 보고 등 보고 3원칙도 수립했다. 이와 함께 승부근성 강화를 위한 사내 교육도 실시한다.
임직원들의 자발적 몰입과 집중력을 강화하기 위해 장시간 근무하는 문화도 바꿔 나가기로 했다. 습관적 야근, 눈치보기 잔업, 주말 특근 등을 줄이고 가족사랑ㆍ자기계발 휴가 등 원할 때 자유롭게 신청할 수 있는 휴가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3대 전략을 구체화한 새 직급 체계와 호칭, 승진 및 보상 제도는 6월 중 발표될 예정이다. 그룹의 중심인 삼성전자가 대대적인 조직 문화 혁신을 선포하면서 다른 계열사들도 곧 이런 움직임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서는 ‘관리의 삼성’이 신생 기업의 문화를 닮겠다고 선언한 것을 두고 이재용 부회장식 체질 개선이 본격화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날 선포식도 실용주의를 지향하는 이 부회장의 지휘 아래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학창시절부터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지냈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 문화에 익숙하다”며 “자신을 포함한 임원들의 과도한 의전을 지양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전했다.
삼성이 잇단 계열사 매각과 합병으로 그룹을 전자와 금융 두 축으로 재편하고, 서울 서초사옥에 입주해있던 경영지원 인력 400여명을 수원 본사로 이전시킨 것 역시 효율성을 강조하는 이 부회장의 성향이 반영됐다는 게 재계 해석이다.
이날 선포식은 삼성전자가 2008년부터 약 8년간 이어 온 ‘강남 시대’를 마감하고 지난 21일 ‘수원 시대’를 개막한 이후 처음 연 행사이기도 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스타트업 삼성 선포는 새 보금자리에서의 새 출발을 삼성 안팎에 알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서희기자 sh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