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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대상, 그 이름은 영화

입력
2016.03.2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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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 시저' 속 유명 배우 휘트록은 촬영장에서 약물을 마신 뒤 납치돼 어디론가 끌려간다. UPI 제공
'헤일, 시저' 속 유명 배우 휘트록은 촬영장에서 약물을 마신 뒤 납치돼 어디론가 끌려간다. UPI 제공

할리우드는 ‘꿈의 공장’이라 불린다. 대중이 마음에 품고 있는 환상을 스크린에 펼쳐내며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해준다. 사회 밑바닥을 전전하던 젊은이들에게는 외모만으로 벼락부자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꿈을 깨면 시멘트 같은 일상이 기다리겠지만 달콤한 환영에 사람들은 중독된다. 영화 ‘헤일, 시저’는 꿈의 공장에서 꿈을 만들고 꿈을 좇는 사람들의 사연을 중심에 놓는다.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유명배우 유괴사건이라는 자극적이고도 민감한 소재를 지렛대 삼아 1950년대 할리우드의 이면을 들춰 낸다.

영화사 캐피톨픽쳐스의 제작 담당 중역 매닉스(조시 브롤린)가 이야기를 주도한다. 그럴싸한 직함과 달리 그가 하는 일은 해결사나 다름없다. 비밀연애로 임신한 미혼 여배우 모란(스칼릿 조핸슨)를 위해 배우가 이미지 손상 없이 아이를 합법적으로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본다. 발성조차 되지 않는 서부극 전문 배우가 세밀한 연기력이 요구되는 추리극에 적응하도록 도와주고, 감독의 불평불만을 무마하기도 한다. 촬영장 주변에서 벌어지는 갖은 추문과 뒷이야기를 캐고 다니는 기자들의 특종 욕심에 적절히 대처하며 미담을 전파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천주교와 기독교, 유대교 관계자들을 만나 제작 중인 영화가 종교적으로, 윤리적으로 별 문제가 없음을 설파하기도 한다.

일정에 쫓기고, 전화에 매달리며 식사조차 제대로 하기 힘든 매닉스에게 대형 사건이 터진다. 대작영화 ‘헤일, 시저’에 출연 중이던 스타 배우 휘트록(조지 클루니)이 납치된다. 범인들은 영화계의 공산주의자들로 스태프가 제대로 처우 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보상으로 10만달러의 몸값을 요구한다. 첨단산업으로 떠오른 항공업계로부터 스카우트 제안까지 받은 매닉스는 문제 해결 방법과 자신의 진로를 놓고 고민을 거듭한다.

영화는 휘트록 납치 사건의 해결과정을 보여주며 호기심을 자극하고, 할리우드의 촬영장을 들여다보며 볼거리를 던진다. 배우가 액션만 잘하면 만사형통이던 서부극 촬영 모습, 술집을 배경으로 춤추고 노래하는 수병들을 그려낸 뮤지컬 장면, 장대한 성서영화 촬영장, 여배우들이 수영장에서 펼치는 군무 등이 스크린을 장식한다. 납치사건이나 매닉스의 고난하고는 무관하게 옛 할리우드 촬영장을 훔쳐보며 여러 영화 장르를 짧게 훑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아름다운 인어를 연기하다 인어복장 때문에 속이 불편하다며 화를 내며 촬영을 중단시키는 여배우 모란, 영화사 회장님의 지시로 서부극 찍던 배우가 추리극에 곧바로 투입되는 모습 등이 쓴 웃음을 빚어낸다.

영화는 블랙 유머로 할리우드의 씁쓸한 풍경을 그려내면서도 영화에 대한 어찌 할 수 없는 사랑을 드러낸다. 한 여성 편집기사가 매닉스에게 영화 가편집본을 보여주다가 영사기 속으로 스카프가 빨려 들어가 죽을 위기에 처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영화를 만드는 일은 목숨을 위협할 만큼 험난하나 누구도 쉬 빠져나올 수 없이 매력적임을 보여준다. 여러 궂은 일을 처리하며 해결사로 살아가는 매닉스도 어쩌면 영화라는 꿈에 중독돼 있는지 모른다.

공산주의자들은 휘트록의 몸값을 요구하는 편지에 발신자로 ‘당신들의 미래’라고 표기한다. 매닉스를 꼬드기는 항공업계 관계자는 “TV가 등장한 지금 영화판에 무슨 미래가 있냐”고 묻는다. 과학적 이론으로 무장해 세상을 변혁할 주체가 되리라 자부했던 공산주의자들은 세력을 잃은 지 오래다. 영화는 1950년대 이후에도 인류에 꿈과 정보를 전하며 미래의 시간을 채우고 있고, TV와는 공생하고 있다.

영화광들이 좋아하는 영화광 형제 감독(조엘ㆍ이선 코엔)이 영화에 보내는 이 러브레터는 영화의 잠재력과 생명력을 예찬한다. 영화의 진정한 주인은 예술혼을 불태우는 감독도, 까칠한 배우도 아니라 묵묵히 영화 완성에 매진하는 제작자라는 암시는 흥미롭다. 코엔 형제는 상업영화 감독도 아니고 미국 인디영화의 간판 아니던가. 24일 개봉했다. 12세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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