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삭제 예상하고 5개월 뒤 제 발로 신고
은행에 남은 마지막 한 컷에 걸려…장모 ”엄벌” 요청
경기 시흥경찰서는 장모와 부인의 금품을 훔친 혐의(절도)로 이모(33ㆍ조선족)씨를 구속했다고 24일 밝혔다.
이씨는 지난해 10월 장모 이모(57ㆍ조선족)씨와 부인 김모(32ㆍ조선족)씨의 체크카드를 훔친 뒤 4차례에 걸쳐 모두 1,610여만원을 인출해 쓴 혐의다.
경찰에 따르면 안양에 살던 장모 이씨는 지난해 8월 딸이 교통사고를 당하자 시흥 딸 집에 3개월여 머물며 한 살배기 외손주를 돌봤다. 한국에서 만나 2014년 3월 결혼한 사위와 딸의 형편이 넉넉지 않은 것을 알고 딸의 병원비와 생활비도 대신 내줬다.
피의자 이씨는 이 과정에서 장모 체크카드의 비밀번호를 알고 1,240여만원을 몰래 빼내 렌터카를 빌려 타고 다니 등 탕진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가 훔친 돈은 장모가 식당 종업원 등으로 일하며 힘들게 모은 것이었다.
이씨는 사고로 다친 몸을 추스리던 아내의 통장에도 손댔다. 아들 돌잔치 때 들어온 축의금 등 370여만원을 고스란히 인출해 써버린 것이다.
이씨의 범행은 제 발로 경찰에 신고하면서 발각됐다. 자신의 통장에서 돈이 무단 인출된 사실을 안 장모와 부인이 수개월간 신고를 독촉하자, 지난 2월 아내와 경찰을 직접 찾은 것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신고가 늦어진 점을 수상히 여기고 은행 폐쇄회로(CC)TV 영상을 분석, 지난해 10월23일 장모의 체크카드로 현금을 인출하는 이씨의 모습을 포착했다. 다행히(?) 이씨의 행각을 밝혀줄 마지막 CCTV 영상이 남아있었던 셈이다.
수사망이 좁혀오는 것을 직감한 이씨는 뒤늦게 도주, 서울 오류동 원룸촌에 잠적했으나 지난 21일 결국 덜미를 잡혔다.
이씨는 “직업을 구하지 못해 생활비 등이 없었다”며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경찰서에 끌려온 사위를 본 장모는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한다”며 엄벌을 요구했다. 이씨의 아내도 이씨 검거 직전인 지난 20일 이혼소송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친족 간의 재산범죄에 대해서는 처벌이 면제되는 친족상도례 규정도 적용 받지 못했다고 한다. 장모와 아내의 돈을 관리한 주체인 은행도 이 사건의 피해자가 됐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는 허위 신고할 당시 5개월이나 지난 시점이어서 CCTV 영상이 모두 삭제됐을 것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며 “검거 당시 차량에서 흉기와 마스크 등이 발견돼 여죄를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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