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수천조km 가스 덩어리
빛의 80% 속도로 분출 현상 확인
엄청난 중력으로 주변 모든 물질을 빨아들여 빛조차 빠져나갈 수 없다고 알려진 블랙홀에서 길이 수천조㎞의 거대한 가스 덩어리가 빛의 80% 속도로 분출돼 나오는 현상이 확인됐다. 현대 천문학의 최대 난제 중 하나로,‘제트’라고 불리는 이 현상을 관측해 낸 건 한국과 일본의 공동연구진이다.
한국천문연구원은 23일 “한국과 일본의 전파망원경 7대를 연결해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초대형 블랙홀을 6개월 간 관측한 결과, 중심부에서 방출되는 제트가 빛의 속도의 80%까지 도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블랙홀 중심부 근처에서 제트의 운동 속도가 확인된 건 처음이다.
블랙홀에서 폭발하듯 나오는 제트는 별을 비롯한 천체의 움직임을 방해할 만큼 강력한 에너지를 갖고 있어 우주 전체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를 주도한 손봉원 천문연 전파천문연구본부 선임연구원은 “제트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면 우주가 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진화했는지 알아내는데 중요한 단서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동안 베일에 가렸던 블랙홀에 대한 진실이 속속 드러나며 천문학계는 크게 고무되어 있다. 지난달엔 14개국 공동 연구진이 서로의 주변을 공전하는 두 블랙홀을 찾아내기도 했다. 블랙홀만으로 이뤄진 쌍성(雙星)이 발견된 것도 처음이다.
블랙홀의 실체가 밝혀지고 있는 데는 첨단 관측 과학 기술의 발달이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제트를 포착할 수 있었던 건 첨단 망원경 여러대를 실시간 네트워크로 연결한 덕이다. 블랙홀 쌍성을 발견하게 된 것도 초저온 초정밀 기술을 한데 모아 건설한 대형 검출기로 원자 크기의 1,000분의1 길이까지 측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계는 이러한 기술이 향후 신성장 사업의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대형 망원경이나 검출기에 들어가는 정밀 거울 제작과 진동 방지 기술 등은 산업계에서도 활용 가능성이 커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블랙홀 쌍성 발견에 참여한 오정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기업이 직접 개발하기 쉽지 않은 첨단 기술들이 집약돼 있는 최신 우주 연구장비에 선진국들이 대규모 투자를 하는 이유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임소형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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