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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쿠바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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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쿠바의 운명

입력
2016.03.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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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는 소련에 의해 운명이 크게 두 번 바뀌었다. 첫 번째가 1962년 쿠바 미사일위기다.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해상봉쇄에 대해 “전쟁행위”라고 강력 반발했던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나흘 만에 미사일 철수를 결정, 급박했던 핵전쟁 위기를 피해갔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소련과 쿠바의 관계는 급속히 나빠졌다. 쿠바의 공산혁명을 지지했던 동맹국 소련이 사전통보 없이 미사일 협정을 파기한 데 대해 쿠바 국민은 분노했다. 바로 전해의 피그만 침공처럼 혁명정권을 전복하려던 미국의 끊임없는 위협에 시달렸던 쿠바가 배신감을 느낀 것은 당연했다.

▦ 피델 카스트로 당시 국가평의회 의장은 “소련은 냉정하지 못했고, 옳지 않은 결정을 했다”고 맹비난했다. 핵전쟁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쿠바의 안보에 무책임한 소련의 처사를 비판한 것이었다. 피델은 미사일을 철수하는 소련에 미국의 경제봉쇄 해제와 관타나모 기지 반환을 관철할 것을 요구했지만 미국과의 치킨게임에서 꼬리를 내린 흐루시초프에게 그럴 힘이 있을 리 없었다. 쿠바 입장에서는 핵전쟁 위기의 협상국면이 미국의 경제제재에서 벗어나고 잃어버린 땅을 되찾을 절호의 기회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1991년 쿠바에서 마지막 소련군이 철수하고 소련 연방이 무너졌을 때가 쿠바의 명운을 바꾼 두 번째다. 역시 쿠바 지도부와의 상의 없이 이뤄진 철군과 석 달 뒤의 소련 붕괴로 쿠바는 그야말로 고립무원에 빠졌다. 당시 쿠바 경제는 소련에 설탕을 팔고 석유를 얻어오던 종속적 사회주의 분업체제였다. 소련의 원조도 끊기면서 쿠바의 경제규모는 이후 3년 동안 40% 가까이 폭락했다. 미사일 위기가 쿠바에 안보 각성을 불렀다면 소련 붕괴는 경제 홀로서기를 강요한 셈이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역사적 정상회담을 한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혁명 당시 체 게바라나 형 피델보다 더 과격했다. 그의 급진적 농업개혁에 대해 피델조차 “과도한 이상주의”라고 했을 정도다. 그랬던 라울이 실용주의자로 변신하더니 미국과 관계정상화까지 이뤄냈다. 정상회담에서 54년 전 형이 쟁취하지 못한 금수조치 해제와 관타나모 반환을 다시 요구하면서 라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상식적인 명제를 체득하는 데 쿠바는 너무 먼 길을 돌아왔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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