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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절체절명 순간에 구한 아이... 훗날 진상 알고 싶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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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절체절명 순간에 구한 아이... 훗날 진상 알고 싶지 않을까요”

입력
2016.03.2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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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그날의 기록’ 저자 박다영(왼쪽)씨와 박수빈 변호사는 “절망적 순간이든, 희망의 증거든 그 구체적 사실관계를 낱낱이 기록하고 기억하는 작은 노력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세월호, 그날의 기록’ 저자 박다영(왼쪽)씨와 박수빈 변호사는 “절망적 순간이든, 희망의 증거든 그 구체적 사실관계를 낱낱이 기록하고 기억하는 작은 노력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읽는 동안 책을 던져버리고 외면하고 싶은 순간이 오더라도 끝까지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쓰면서도 도망치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승객들을 버리고 방치한 이들처럼 비겁해지진 않겠다는 다짐으로 버텼어요.”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방대한 기록과 자료를 분석한 ‘세월호, 그날의 기록’(진실의 힘)이 출간됐다.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들을 위한 재심재판을 통해 국가책임을 추궁해 온 재단법인 ‘진실의 힘’이 추진한 ‘세월호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이사 조용환 변호사가 이끌고 뜻있는 변호사, 후원자들이 힘을 모았다.

기록팀 저자는 모두 네 명. 박다영씨, 박수빈 변호사, 박현진씨, 정은주 한겨레 21기자다. 저자들은 “작은 손전등 하나로 깊은 바다 속 배를 비추는 데 새로운 손전등을 하나 더 보태는 정도”라고 몸을 낮췄지만, 이들이 총 10개월간 합숙에 가까운 생활을 하며 망라한 기록의 분량은 각종 재판, 소송, 공판, 조사 기록 등 15만 장과 3테라바이트에 달한다. 21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 진실의 힘 사무실에서 만난 박다영(28)씨와 박수빈(29) 변호사는 “검찰, 감사원 등 기관이 각자의 목적에 따른 나름의 충분한 조사를 했지만 시민의 눈으로 이들 자료를 검토해 진상을 기록하는 작업이 꼭 필요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지인의 소개로 기록팀에 합류했다. 언론대학원을 졸업한 다영씨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일종의 채무, 책무감을 느끼던 중 ‘기억하자’는 구호를 넘어선 기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지난해 법조계에 첫발을 내디딘 박 변호사는 “진실의 힘에서 사안을 다룬다면 객관적 사실 그 자체를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힘을 보탰다.

책은 사고 발생부터 침몰까지 101분을 낱낱이 따져 정리한 1부 ‘그날, 101분의 기록’으로 시작된다. 당시 배의 각 공간에서 벌어진 객관적 사실을 분 단위로 정리했다. 수사기록, 마지막 순간까지 희생자들이 기록한 동영상과 카카오톡 메시지 등이 총동원됐다.

“살아 돌아온 아이들이 용기를 내 힘겹게 말해준 진실들, 생사의 고찰을 보여주는 장면들을 기록하면서 마음이 아파 힘들었어요. 책에 첨부한 배 도면으로 모형을 만들고, 진술내용에 따라 기울기에 따른 상황 등을 재현하는데 엄습하는 감정이…. 그래도 너무 과잉해서 슬퍼하지도, 분노하지 않고 사실과 책임관계를 기록하려고 애썼어요.”(박수빈 변호사)

이 때문에 책에는 각 구조 지휘세력의 발언, 행동, 사후 해명이 관련 조항, 시행령, 규정, 매뉴얼 등에 비춰 얼마나 불합리한지를 조목조목 따지는 대목이 많다.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이야 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도덕적 비난보다 강력한 비판의 도구가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다영씨는 “책에 ‘해경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참 많이 나오는데, 이 모습과 소방호스로 아이들을 구하려 마지막까지 사투를 벌인 승객 등 무엇인가를 하려 노력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감정을 배제하고 보여주는 것 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집요하게 사실관계를 파고든 만큼 기록팀이 새로 주목해 발굴한 진실의 조각들도 적잖다. 특히 선원들이 구조세력 부족을 이유로 승객들을 방치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제주 운항관리실과 세월호의 교신 내용은 검찰, 법원, 국회, 감사원 등에서 공개되지 않았던 내용이다. 세월호와 마지막 교신을 한 곳은 제주 운항관리실로 1등 항해사 신정훈이 “승객이 450명이라 경비정 한 척으로는 (다 구조하기)부족하다”고 말한 뒤 교신이 끊겼다.

그 밖에 저자들은 ▦해경 본청 상황실이 중앙구조본부를 꾸리면서 명시한 현장지휘자는 김수현 당시 서해해경청장, 김문홍 목포해경서장이었지만 구조 실패의 책임을 떠안고 형사처벌을 받은 것은 123정 정장 김경일 뿐이었으며 ▦해경 지휘부는 사후에도 번번이 제 역할을 “현장 지휘”가 아닌 “상급 부서에 보고하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는 점 ▦해경이 최소 5건 이상의 서로 다른 TRS(무선통신시스템) 녹취록을 만들며 교신 일부를 통째로 삭제, 조작한 정황이 보이는데도 이를 검증한 기관은 한 군데도 없었다는 점 ▦세월호 내에서 배가 기울어지기 시작하고 최소 12차례 “제 자리에서 대기하라”는 방송이 집요하게 되풀이 됐다는 점 등에 주목했다.

전체 기록은 당시 구조, 지휘세력의 태도가 ▦수뇌부부터 현장관리자까지 “제게 (퇴선을 명령할)재량권이 없었다”고 입을 모으는 보신주의 ▦상부 보고에 대한 과잉집착 등 2가지로 요약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박 변호사는 “결국 자기자리에서 해야 될 것들을 외면한 행동, 목적을 생각하지 않은 행동들이 누적된 것이 세월호 사건의 본질”이었다며 “이제까지도 총체적인 진상에 대한 최종검토와 반성 없이 주먹구구식 대책만 쏟아져왔던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책이 나오고 의외로 일반시민 분들께 ‘고맙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 제가 작업에 참여했던 것처럼 모두 나름의 채무감을 가지고 계셨다고 생각해요. 당시의 상황에, 기록에 직면해야만 치유하고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모두에게 아직도 그 과정이 부족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박다영씨)

참담하고 적나라한 진실의 조각들을 건지고 닦아 꿰느라 지칠 법도 하지만, 두 사람은 그래도 “독자들이 구석구석에서 희망을 읽어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그들은 단 한 사람, 세월호 희생학생들에 의해 구조된 권모(7ㆍ당시 5세)양의 동선을 되짚으며 희망을 봤다.

“학생들이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여기 애기 먼저요. 애기 있어요’를 외치며 권양을 구조해 내는 장면은 다양한 흔적을 모아 복원하려고 애썼어요. 절망의 순간에서도 우리에겐 희망이 있고, 권양이 10년 뒤쯤, 피해자 아이들의 나이가 됐을 때 조금이라도 우리 사회가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믿고 노력해 보자는 거죠.”(박다영씨) “권양이 성장해 그 날 자신이 겪은 일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을 때, 누군가 가장 객관적이라고 추천할 수 있는 기록이 됐으면 좋겠어요. 안타까운 대목이 많지만 그 와중에도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의 위대함을 되새기며 그 사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죠.”(박수빈 변호사)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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