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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로봇 연기’ 했던 김무성, 이번엔 달렸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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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로봇 연기’ 했던 김무성, 이번엔 달렸다는데

입력
2016.03.23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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젝스키스 출신 연기자 장수원씨를 패러디 한 ‘로봇 연기’를 선보여 화제가 됐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4ㆍ13 총선을 앞두고 이번엔 ‘이어 달리기’에 도전했습니다. 새누리당 후보들이 총선 5대 공약을 1년 내 이행하지 않을 경우 세비를 반납하겠다는 다짐을 전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선거를 앞두고 으레 등장하는 일회성 정치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적지 않습니다. 키 182㎝, 몸무게 87㎏의 김 대표가 이번에는 큰 덩치에 걸맞게 약속을 지키는 ‘큰 정치’를 지켜낼 수 있을까요.

새누리당 20대 총선 5대 공약 이어 달리기 영상 캡처.
새누리당 20대 총선 5대 공약 이어 달리기 영상 캡처.

영상은 빨간 운동화를 신고 서울 여의도 국회를 바라보며 마포대교 위를 뛰는 김 대표의 뒷모습을 비추며 시작합니다. 김 대표는 “우리 모두는 국민의 행복을 최우선 과제로 모든 정책을 입안하고 실천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국민의 행복을 위해, 뛰고 또 뛰겠습니다. 뛰어라 김무성, 뛰어라 국회야”라며 ‘대한민국과의 계약서’에 서명을 합니다. ‘계약은 서명일로부터 법적 효력을 가진다’는 자막이 같이 뜹니다. 영상은 “원유철도 뛰어라”며 바통을 새누리당 투 톱인 원유철 원내대표에게 넘기는 것으로 끝납니다.

김 대표는 지난해에도 4ㆍ29 재보선을 앞두고 51초 분량의 온라인 CF를 통해 ‘로봇 연기’를 선보인 바 있습니다. ‘추리닝’(트레이닝복)을 입고 한강둔치에 앉아 컵라면을 먹으며 “소통, 소통, 소통이 무슨 동네 개 이름이야? 어디 얘기할 데가 있어야 얘길 하지”라고 한탄하는 한 청년에게 김 대표가 트렌치코트 입고 다가와 “괜찮아요, 많이 놀랬죠?”라고 말을 건네는 내용입니다. ‘미생’을 패러디한 드라마 ‘미생물’에서 주연을 맡은 연기자 장수원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덕분이었을까요, 여권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성완종 리스트’ 파문 속에서도 새누리당은 27년 동안 야당이 차지해 온 서울 관악을을 포함해 수도권에서 전승했습니다.

사실 김 대표 집안에 ‘연기자 피’가 흐르고 있기도 합니다. 장남 고윤씨가 영화 ‘국제시장’에 출연한 연기자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 64세로 적지 않은 나이와 집권 여당 대표라는 체면을 생각하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요. 더군다나 김 대표가 20대 총선 공약 홍보 동영상을 촬영한 건 지난 15일입니다. 김 대표를 겨냥한 윤상현 의원의 ‘막말 녹취록 파동’이 터지면서 친박계와 비박계 간 공천 갈등이 막장으로 치달을 때였습니다. 비박계 맏형인 5선의 이재오 의원과 친유승민계인 조해진ㆍ이종훈 등 비박계 의원이 줄줄이 낙천한 날이기도 합니다. 상향식 공천을 공언해온 만큼 김 대표로서는 정치적 리더십에 흠집이 날 수 있는 백척간두의 위기 상황이었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촬영 당일 김 대표는 당 사무처의 영상 촬영 요청에 응할지 깊이 고민했다고 합니다. 자칫 정치적 의미가 부여되는 행보로 비춰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20대 총선 선거 캠페인을 지휘하고 있는 조동원 홍보본부장은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를 위한 일”이라고 김 대표를 가까스로 설득했다고 합니다. 조 본부장은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광고 카피로 유명한 스타 광고인 출신으로, 지난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변화를 이끌어내며 총선을 승리로 이끈 한 주역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당내에서는 ‘이어 달리기’ 영상에 등장하는 김 대표의 뒷모습이 유독 쓸쓸해 보인다는 감상평을 내놓는 이가 적지 않습니다. 친박계가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공천 칼날에 비박계 현역 의원들이 늦봄 벚꽃 잎처럼 흩날리는 상황에서 “인위적 물갈이 공천은 없다”고 공언해 온 김 대표의 심경이 어떨지 헤아려서 하는 말로 들립니다. 친박계가 주도한 지난 2012년 19대 총선에서 김 대표가 끝내 낙천한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입니다. 김 대표는 당시 두 편의 당 홍보 동영상에 출연해 주위를 살짝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영상에서 그는 “나는 옷도(공천장도) 안 주더라”고 하는가 하면, “아직 살아있네, 살아있어”라고 천연덕스럽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새누리당의 20대 공천이 사실상 마무리 된 지금, 김 대표는 19대에 이어 또다시 공천 문제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한 모양새입니다. 김 대표는 이전에 불출마를 선언한 뒤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켰습니다. 재보선에서 당당히 승리해 당 대표 자리까지 꿰찼습니다. 당내에서는 김 대표가 이번에 쓸 수 있는 유일한 반전 카드는 ‘총선 승리’라고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김 대표가 공약 계약서에 서명하며 “5대 공약을 1년 내 이행하지 않을 경우 세비를 반납하겠다”고 말한 것을 두고 단순한 선거 캠페인을 너머 자신의 심경을 빗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는 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 중 이 약속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이가 몇이나 될지는 의문입니다.

김 대표는 한편으론 여당 대표일 뿐 아니라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여권의 유력 차기 대선주자이기도 합니다. 이번 약속이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4ㆍ13 총선 승리만을 위한 ‘공약(空約)’으로 그칠 것이라는 의심이 실제 현실이 된다면, 과연 유권자들은 차기 대권을 꿈꾸는 김 대표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상향식 공천’을 약속하며 당 대표자리에 오른 김 대표는 일련의 공천 갈등 속에서 “당 대표로서 당헌·당규를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버텼습니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대표는 막을 능력도 의지도 없다”(조해진 의원)거나 “역사에 비루한 간신으로 기록 될 것”(정두언 의원)이라 비판합니다. 물론 공관위는 차치하고 최고위에서도 친박계에 수적으로 밀리는 상황에서 김 대표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느냐는 현실론이 있지만, 그렇다고 김 대표가 잘했다고 손을 들어주는 이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정치는 과정이지만, 정치인은 결과로 심판 받는다”는 말은 정말 곱씹어 봐야지 싶습니다.

이동현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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