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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덤, 나쁜 덤, 이상한 덤

입력
2016.03.2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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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을 기본으로 여기는 세상이다. 동네 편의점부터 아파트 분양시장까지, 몇 백원짜리 요구르트부터 수백만 원 대 다이아몬드까지, 주고받는 덤의 성격도 종류도 그 의미도 가지각색이다. 따뜻한 인심의 또 다른 이름이 ‘덤’이라면 미끼를 동원한 얄팍한 상술 역시 ‘덤’으로 통한다. 덤을 받기 위해 필요 없는 물건을 사고, 여기 저기 덤이 흔하니 덤을 못 받으면 손해라 여긴다. 원래 주는 사람 마음이라는 덤에 얽힌 이야기를 모았다.

#좋은 덤

직장인 임모(44ㆍ남)씨는 며칠 전 서울 원효로의 ‘ㅂ’ 커피숍에 들렀다가 뜻밖의 덤을 받았다. “너의 선택을 응원해.” 또박또박 쓴 손글씨가 하얀 커피잔 뚜껑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사고 그보다 더 훈훈한 마음을 덤으로 받은 셈이다. “덤 받는 기분이 좋네요.” 임씨의 말에 바리스타 조자현(34ㆍ여)씨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네? 덤이요? 아… 그냥 서비스죠.”

‘너의 선택을 응원해’…

커피잔 뚜껑 위에 쓴 손글씨

손님들에게 훈훈한 마음 전달

조씨가 커피잔 뚜껑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14년 크리스마스, 조그만 이벤트 한답시고 글을 몇 자 적었는데 손님들의 반응이 너무 좋았다. 그 날 이후 한가할 때 틈틈이 글을 써 두었다가 손님에게 전한다. 주로 책이나 인터넷, 영화에서 좋은 문구를 보면 메모를 해두는데 손님이 맘에 드는 문구를 골라가기도 한다. ‘당신은 행복한 사람’ ‘한 그루 나무처럼’ ‘내 마음을 알아채는 일’ 등 다양한 문구가 적힌 커피잔 뚜껑들이 매장 한 편에서 대기하고 있다. 조씨는 “하루 200~300개를 쓰다 보면 힘은 들지만 손님들이 손글씨에 힘을 얻고 간다고 할 때마다 보람을 느껴요”라고 말했다. “덤이 또 하나 있는데 SNS에 저희 매장 커피 사진을 올려주시면 무료 쿠폰을 드려요. 사진 한 장이 홍보에 큰 도움이 되거든요.” SNS 인스타그램에 입소문이 제법 퍼지면서 문의는 많이 오는데도 아직 따라 하는 매장은 없다. 따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써야 하는 손글씨가 ‘줘도 그만 안 줘도 그만’인 덤이기 때문 아닐까.

#나쁜 덤

주부 최모(40ㆍ여)씨는 얼마 전 아이가 사 온 아이돌 그룹의 앨범을 보고 분통이 터졌다. 성화에 못 이겨 앨범 구매를 허락했는데 아이가 똑같은 앨범을 2장이나 사온 것이다. 수록곡은 똑같은데 덤으로 주는 화보집을 두 가지 버전으로 제작한 것이다. 인터넷 쇼핑몰을 뒤져보니 한 앨범을 포토카드나 화보집, 포스터 등 덤의 종류에 따라 3~4가지 버전으로 만들어 파는 경우가 흔했다. 최씨는 어린 ‘팬심’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기획사들의 얄팍한 ‘덤 마케팅’에 치를 떨었다.

아이돌 앨범 팔 때 덤으로 주는 화보집

여러 가지 버전으로 제작

어린 팬심 홀리는 상술

A를 사면 B를 덤으로 주는 편의점의 ‘덤 마케팅’은 사람에 따라 쓸데 없는 강요로 받아들여질 때가 있다. 대학생 서모(25ㆍ남)씨는 얼마 전 집 앞 편의점에서 호빵을 집었는데 점원에게서 “호빵 사시면 우유가 덤입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평소 우유를 잘 소화시키지 못하는 서씨는 덤을 받지 않고 호빵 값을 치렀다. 불편한 느낌은 편의점을 빠져 나온 뒤부터 들기 시작했다. “호빵 가격에는 먹지도 못하는 우유 값도 포함 됐을텐데…” “유통기한 짧은 유제품을 덤으로 주는 건 혹시 재고처리 아닐까?” 왠지 손해 본 느낌과 함께 불쾌감이 밀려들었다. 서씨는 “‘호빵에 우유’뿐 아니라 ‘해장국밥에 컵라면’이나 ‘옥수수 스낵에 크림 웨하스’등 소비자에게 선택권 없는 덤 상품은 왠지 강요받는 것 같아 집어 들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은근슬쩍 덤으로 이득을 보려는 구태는 국회에서 흔하다. 최근까지도 예산안이나 선거구 획정안 등을 볼모로 다른 쟁점법안을 덤처럼 얹어서 처리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았다. 거의 합의에 이르렀다가도 덤으로 슬쩍 얹은 법안 때문에 여야 간에 충돌이 일어나고 국회가 파행하는 일이 여의도에서는 다반사다.

#이상한 덤

주부 김모(42ㆍ여)씨는 최근 경기도의 한 백화점 식품매장에서 이상한 가격표를 발견했다. 680ml짜리 샴푸 한 개(A)가 1만3,000원인데 비해 내용물은 같고 용량만 적은 500ml짜리 3개에 물병까지 들어있는 행사상품(B)이 1만1,900원에 불과했다. 물병을 제외하고 샴푸 100ml당 가격만 따져도 각각 1,912원과 793원으로 덤 주는 B가 안 주는 A에 비해 60% 가까이 저렴하다.

이상한 덤은 같은 매장에 또 있었다. 믹스커피 180개 들이 한 박스(C)가 2만9,120원, 바로 옆 동일한 제품에다 무선 전기주전자를 덤으로 주는 행사상품(D)에는 1만9,800원짜리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덤으로 주는 전기주전자의 시중최저가가 9,800원임을 감안해 따져보니 덤이 붙은 D가 그렇지 않은 C에 비해 65%나 더 저렴했다. 애초 커피 구입의사가 전혀 없었던 김씨는 자신도 모르게 덤 붙은 D를 쇼핑카트에 담았다.

180개 들이 믹스커피 2만9120원

전기주전자 붙은 것은 1만9800원

덤 포함 계산하면 가격은 65%나 차이

이상하다 못해 황당한 덤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가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인터넷 가격비교를 해 보면 궁금증을 어느 정도는 해소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 680ml짜리 샴푸(A)가 3,780원, 500ml는 2,800원이다. 680ml짜리 단품의 경우 백화점 가격이 3배 이상 비쌌다. 또한, 500ml 3개가 8,400원이고 물병의 최저가를 1,600원정도로 본다면 행사상품은 인터넷 가격 기준 1만원이다. 이를 원가로 계산하더라도 백화점은 1,900원을 남길 수 있다. 결국 덤을 주든 안 주든 ‘남는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행사상품 판매를 유도하기 위해 다른 상품에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을 붙여놓은 것 같다”면서도 “커피는 고객들이 많이 찾는 제품군인데 저마진이나 역마진을 감수하면서까지 덤을 붙여 판매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품 가격 비싸게 책정해

행사상품 구매를 유도하는 듯

직장인 김모(25ㆍ여)씨는 최근 여성패션잡지를 두 권 구입했다. 김씨의 잡지 구매 이유는 다름아닌 부록, 즉 책을 사면 얹어 주는 화장품을 받기 위해서다. 김씨가 잡지 두 권을 구입하고 받은 화장품은 모두 다섯 종, 합하면 7만~8만원 상당이다. 이에 비해 잡지의 권당 가격은 약 7,000원 정도. 김씨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대부분 여자들이 ‘혹’하는 브랜드인데다 시중에서 품절대란까지 나는 제품”이라며 덤의 희소성을 강조했다. 김씨는 자신이 구입한 잡지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그래픽=강준구기자 wldms4619@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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