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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에서 23년, 낮아짐의 축복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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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에서 23년, 낮아짐의 축복을 배웠다”

입력
2016.03.22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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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덕종 우간다 마케레레 의대 명예교수가 현지 물라고 병원에서 기관지경 검사를 마친 환자와 함께 활짝 웃고 있다. 홍성사 제공
유덕종 우간다 마케레레 의대 명예교수가 현지 물라고 병원에서 기관지경 검사를 마친 환자와 함께 활짝 웃고 있다. 홍성사 제공

“의사로서 도움을 주겠다는 생각에 우간다에 갔지만, 그곳에서 23년간 지내며 더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낮아짐의 축복’이었습니다.”

정부파견의사로 우간다에서 23년간 일한 뒤 이달 초 에티오피아로 근무지를 옮긴 내과전문의 유덕종(57) 교수는 18일 이메일을 통해 “고통받는 이들을 내가 치료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들을 통해 내가 치유받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최근 파견의사로 봉사하며 체험한 것을 글로 엮어 ‘우간다에서 23년’(홍성사 발행)을 펴낸 유 교수는 “이웃을 사랑하고 봉사하며 자신을 희생하는 겸손한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했다.

유 교수는 1992년 서른셋의 나이에 코이카(KOICAㆍ한국국제협력단) 1기 정부파견의사로 우간다에 갔다. 국립후송병원인 물라고 병원에서 환자들을 진료하는 한편 동부아프리카 명문 의대 마케레레 의과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했다. 마케레레 의대에서 2014년 ‘올해의 교수’로 선정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2,000명에 달하는 제자들은 아프리카 전역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다. 유 교수는 의료 및 교육 활동의 경험담은 물론 23년간 살며 체득한 현지 정치 사회 역사 문화 전반에 대한 정보를 책에 담았다.

유 교수가 아프리카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건 의대에 진학하기 훨씬 전부터였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할머니를 잃고 허무주의에 빠져 있던 그는 “대학 시절 종교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찾고 나서 허무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유 교수는 “치안ㆍ질병ㆍ교육 등 문제가 많은 우간다로 떠날 결심을 한 것도, 그곳에 계속 머물 수 있었던 것도 신앙의 힘 덕분”이라고 말했다.

우간다에서의 삶은 상상 이상이었다. 살인, 강도가 끊이지 않았고 병원 근무 환경도 열악했다. 그를 가장 괴롭혔던 건 의사로서 느끼는 무력감이었다. 기본적인 의료 기기와 의약품이 없어서 죽어가는 환자들을 보며 거듭 좌절했다. 이로 인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기도 했다. 좌절 속에서 그를 구해준 건 죽을 위기에 처했던 큰 딸이었다. 그는 “의사로서의 존재감을 느낄 수 없었던 때 딸 아이를 치료하면서 의사로서 나를 재발견했다”며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했다. 유 교수가 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병원 설립을 꿈꾼 것도 그때부터였다. 오랜 노력 끝에 그는 2002년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 베데스다 클리닉을 개원했다.

유 교수는 에이즈 감염 위기도 무수히 넘겼다. 에이즈 환자에게 썼던 바늘에 찔리기도 하고 에이즈 환자의 피를 뒤집어쓴 적도 있다. 음성 판정이 나오기까지 두려움에 떨기도 했지만 그는 “진료하는 환자들이 대부분 에이즈 환자들인데 그들의 심적인 고통과 절망감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유 교수는 이달 말부터 에티오피아 짐마대학교 의대에서 제자들을 가르칠 예정이다. 보건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큰딸도 아프리카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고 한다. “저는 봉사했다기보다 오히려 제가 배우고 사랑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우간다는 저의 제2의 고향입니다. 제가 사랑하고,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요. 은퇴하면 그곳에서 환자들을 돌보며 살 생각입니다. 사랑하고 사랑 받는 삶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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