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반도체업체 인텔(Intel)을 30년 넘게 이끌면서 정보산업이 핵심인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비약적 발전을 이끈 미국 정보통신업계 신화적 인물 앤디 그로브 전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21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79세. 인텔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줄곧 파킨슨병, 전립선암 등을 앓아온 그로브가 오랜 투병 끝에 캘리포니아주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실리콘밸리의 아이콘’으로 IT업계의 추앙을 받아온 그로브 전 최고경영자는 1980년 대 중반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던 인텔의 주력 사업을 메모리칩에서 개인컴퓨터용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전환하면서 인텔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90년대부터 확산된 개인 컴퓨터 붐을 미리 알아채고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의 가능성을 내다본 그는 1997년 미 시사주간 타임의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는 등 입지전적인 기업인으로 승승장구했다. 1979년 인텔 사장, 1987년 CEO, 2005년 이사회 의장을 거치면서 변덕스러우면서 전투적인 경영스타일로 이름을 알렸던 그로브는 험난한 유년시절을 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1936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태생 유대인인 그는 4세 때 성홍열을 앓고 청력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상태로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피해 15년 동안 도망자로 살았다. 20세 때 가족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무일푼에 영어마저 익숙하지 않은 난민이었지만 본명인 안드라스 그로프를 버리고 미국식 이름으로 개명한 후 뉴욕시립대와 UC버클리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곧바로 IT업계로 투신했다.
미국 IT업계 주요 인사들은 일제히 그로브의 별세 소식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애플 최고경영자 팀 쿡은 “그로브는 IT 세상의 가장 큰 거인 가운데 한 명이었다”고 밝혔으며 양위안칭(楊元慶) 레노버 회장은 “IT를 받쳐주던 기둥이 우리 곁을 떠났다”고 말했다. 1980년대 말 동료였던 로버트 버겔만 스탠퍼드대 교수는 “그로브가 없었다면 인텔은 물론 미국의 반도체 산업은 우리가 아는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고 추모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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