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21일 미국 수도 워싱턴D.C. 한복판에서 그들의 힘을 과시했다. 미국 내 친 이스라엘 유대계 로비단체 ‘미국ㆍ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 연례총회에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을 제외한 민주ㆍ공화당 대선 주자 4명이 모두 참석해 각각 앞다퉈 ‘친 이스라엘’ 후보라는 점을 강조했다.
과거 선거유세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에서 중립을 지키겠다고 밝혀, 유대계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온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의 발언을 모두 번복했다. 트럼프는 이날 워싱턴 시내 버라이존센터에서 열린 AIPAC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란의 대 이스라엘 적대 정책을 비난하는 한편 대통령이 되면 텔아비브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이스라엘 희망대로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는 그가 곧 유대계 가족이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유대계 사위 재럿 커쉬너(31)와 결혼한 장녀 이반카 트럼프(35)가 곧 유대민족의 피를 이어받은 손주를 출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친 이스라엘 성향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한편 트럼프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트럼프가 AIPAC 총회에서 이스라엘 관련 입장을 바꾼 것과 관련, “우리는 안정적이고 단호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월요일에는 ‘중립’을 취하고 화요일에는 ‘친 이스라엘 정책’주장하는 대통령은 안 된다. 이런 사람은 모든 게 협상 가능하므로 수요일에는 또 어떤 다른 입장을 취할지 아무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클린턴은 이어 “(유대계) 친구들이여, 이스라엘의 안보는 절대로 협상이 불가한 것”이라며 막강한 자금력과 영향력을 가진 유대계 사회가 연말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해 줄 것을 당부했다. 또 “대통령이 되면 가장 먼저 이스라엘 총리를 백악관으로 초청할 것”이라고도 약속했다. 클린턴의 발언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들어 틀어진 양국 관계를 자신이 확실하게 복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미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지는 못했지만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과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도 자신들의 이스라엘 정책에 대해 연설했다.
유대계 청중들은 클린턴에게 상대적으로 더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다. 클린턴이 ‘이스라엘의 안보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한 순간 박수와 환호, 기립박수까지 받았다. 트럼프의 경우 큰 호응은 없었지만 당초 우려했던 진보성향 유대계 랍비들이 집단 퇴장은 발생하지 않았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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