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진영은 MBC 종영드라마 '화려한 유혹'에서 전 국무총리 강석현 역을 맡아 '할배파탈'(할배+옴므파탈)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극중 최강희를 향한 일방적 짝사랑이었음에도 시청자들이 매료됐다. 깊고 촉촉한 눈빛과 중후하고 부드러운 음성이 '정진영표' 강석현을 탄생시켰다. 아내의 질투는 없었을까. 정진영은 "오십 넘은 남편한테 무슨 질투를 했겠나. 칭찬만 해줬다"며 껄껄 웃었다.
-'화려한 유혹'은 어떤 작품인가.
"여느 드라마와 달리 조금 특별하다. 배우들끼리 겹치는 장면이 없으면 친해지기 힘든데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대본리딩에서 만나 친분을 쌓았다. 단체카톡방도 만들어 번개 쳐서 술마신다. 하하."
-카톡방에 보낸 메시지가 궁금하다.
"마지막 촬영까지 끝내고 '뜨겁게 사랑하고 뜨겁게 미워하세요'라고 보냈다. 우리 드라마 내용이다. 우주 최강의 팀워크로 8개월을 함께 했는데 영원히 그리울 것 같다."
-처음에 캐스팅 제안 받고 거절했다던데.
"시놉시스 보고 거절했다. 모노타입의 캐릭터인줄 알고 제쳐뒀다가 나중에 작가와 감독을 만나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을 안 했다면 아쉬웠을 거다. 작품을 하고 안 하고는 배우의 운명에 달렸다고 믿는데, 강석현은 나의 운명이었다."
-치매 연기는 어땠나.
"어려웠다. 단순히 이성을 잃는 연기가 아니다. 그 속에서도 감정을 가지고 가야하고, 사랑도 고백해야 하고, 앞으로의 전개에 대한 힌트도 줘야 한다. 게다가 흐트러짐 없었던 강석현이라는 인물이 치매에 걸린 거라 더욱 신경이 쓰였다. 둥둥 떠다니는 나룻배 위에 누웠다는 상상도 했다. 아무튼 별짓 다 했다."
-극중 먼저 죽어서 기분이 이상할 것 같다.
"내가 앉아서 연기했던 자리가 눈에 밟힌다. 나야 촬영이 끝나서 편한데 배우들은 또 얼마나 고생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태국여행을 다녀왔다. 그래서 지금 얼굴이 새까맣게 탔다."
-최강희와의 멜로 호흡은.
"은수 캐릭터는 최강희가 아니면 상상이 안 된다. 최강희라는 배우 자체도 예뻐하지만 그냥 캐릭터 자체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눈이 맑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연기할 땐 나보다 (최)강희가 더 힘들었을 거다. 나야 일방적인 짝사랑이니 계속 사랑하는 마음만 가져가면 되는데, 강희는 분노, 복수, 연민 등 복잡했을 테니까."
-극중 36살차 멜로인데 걱정은 없었는지.
"과연 그 나이 차에 결혼이 가능할까. 시청자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연기하는 것이 큰 과제였다. 이 드라마는 강석현 잘못으로 시작된 이야기다. 강석현은 나쁜 사람이다라는 전제하에 멜로가 들어가면서 그가 잘못을 뉘우치게 된다. 대본을 따라 감정을 이해했고 결국 멜로를 잘 받아주신 시청자 덕분에 할배파탈이라는 수식어도 얻었다."
-할배파탈 수식어는 마음에 드는가.
"제작사 쪽에서 설명을 해줘서 알았는데 멋있는 이야기더라. 멜로의 농도가 이렇게 짙을 줄은 나도 몰랐다. 처음엔 소속사에서 지어낸 이야기인가 의심했다. 하하."
-팬 갤러리도 생겼던데.
"알고 있다. 너무나 감사하다. 간식차 커피차도 보내주셨다. 인사도 했다."
-온라인 반응을 살피나보다.
"포털사이트 메인에 있는지 없는지부터 확인한다. 경쟁작은 잘 걸어주던데 우리 드라마는 잘 안 걸린다. 화제성이 떨어지나보다. 아쉽지만 그래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걸 잘 안다."
-팬들이 올려둔 재미있는 사진들도 봤나.
"'앤젤아이즈' 종방연 때 찍은 사진이 기억난다. 당시 운동갔다가 한 시간 먼저 도착했는데 이미 기자분들이 계시더라. 옷 갈아입고 온다니까 그 모습이 더 좋아보인다며 사진을 빨리 찍어가셨다. 원래 옷을 신경을 안 쓰는 편이기도 하고, 작품 하면서 고운 옷 많이 입는데 뭐."
-데뷔 이래 첫 소속사인 FNC는 어떤가.
"27년 만에 처음 만난 소속사다. 이런 인터뷰도 조직해주고 서포트도 잘해준다. 영화 '강남 1970'에 설현과 함께 출연했던 것이 인연이 됐다."
-다시 MC에도 도전할 생각이 있나.
"'그것이 알고싶다', '휴먼 서바이벌 도전', '나는 가수다' 등의 MC를 봤다. 경험해본 결과 예능은 깜냥이 안 되고 진지한 토크쇼가 있다면 해보고 싶다. 재미보다 진솔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내가 하고 싶다고 되겠는가.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혹시 모를 일이다. 예능으로 뜰 수도 있다.
"예능은 미덕이 있는 장르다. 시청자들의 피로를 웃음으로 풀어준다. 하지만 나에겐 그런 재주가 없다. 영화 홍보 때문에 몇 번 나갔는데 좌불안석이었다."
-올해 영화 '시간이탈자' '판도라' 등도 개봉한다.
"영화와 드라마를 병행한다는 건 참 재미있는 일이다. 달라진 속도감이 나를 긴장시킨다. 매너리즘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이제 드라마를 끝냈으니 영화에 들어가고 싶은데 나에게 맞는 역할이 있는지 모르겠다."
-'화려한 유혹'의 짝사랑 아쉬움을 달랠 멜로는 어떤가.
"생각은 있는데 그런 기회가 주어질지는 미지수다. 나이에 맞는 멜로가 나오지 않을까. 또 멜로라는 장르에 연연하기보다 새로운 캐릭터를 만난다는 생각으로 작품에 임한다."
-작품은 어떻게 선택하는가.
"대본의 완성도와 연출자의 의도라 중요하다. 또 내가 도전할만한 캐릭터인가를 알아본다. 복잡한 캐릭터에 끌린다. 머리가 더 희끗희끗 해졌으면 좋겠다. 나이 먹은 배우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다."
사진=이호형기자
황지영 기자 hyj@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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