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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이름이 갖는 힘

입력
2016.03.22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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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가볍지 않다. 누구나 이름을 갖는다. 이름이 그를 상징하고 대표한다. 이름은 사회적 관계와 그의 삶 그리고 그가 해낸 일에 대한 평가를 지닌다. 이름값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이름은 실체가 된다.

김춘수 시인의 ‘꽃’을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의 하나로 여기는 건 아마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실존적 성찰이 주는 힘 때문이고 실체가 되었을 때 비로소 관계 맺음이 가능하다는 인식의 재확인 때문일 것이다. ‘창세기’에 ‘아담이 생물 하나하나를 부르는 그대로 그 이름이 되었다’는 대목은 단순히 아담이, 사람이 우주만물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관계 맺음이 가능해졌다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대상을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거쳤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날마다 7명의 청년들이 자살한다. OECD가입국 가운데 청년 자살률이 세계1위다. 부끄럽고 두려운 일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성세대들은 이 문제에 대해 둔감하다. 청춘들의 삶의 상황과 비슷한 삶을 겪지 않았기에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외면 속에 청년들이 삶을 포기한다. 고통 받는 청춘들은 스스로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능력은 기성세대의 그것을 훨씬 능가한다. 다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뿐이다. 지치고 절망한 청춘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체념하거나 삶을 포기한다. 깨었다고 여기는 기성세대들은 왜 청춘이 사회적 불의와 굴절된 체제의 부조리에 저항하지 못하느냐고 안타까워하지만 그건 자기변명에 불과하다. 그들은 해도 해도 개선되지 않는 자신의 삶에 이미 절망하고 또 다른 절망 앞에서 벽을 느낄 뿐이다. 분노할 힘조차 없다. 그러면서 자신의 무능으로 체념한다.

‘헬조선’이니 ‘흙수저’니 하는 말들이 생겨났다. 그것은 새로운 ‘이름’이다. 이름은 단순히 어떤 현상을 지칭하는 명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나만 힘든 줄 알았고 나의 능력 부족 탓인 줄 알았는데 그게 일반적 현상이고 하나의 사회적 틀이 되었다는 걸을 보편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 바로 이러한 이름들의 출현이다. 이름의 출현은 단순한 사회적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이 더 이상 내 나라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고사하고 넌더리 나서 떠나고 싶은 지옥이라 인식하게 만들고, 아무리 내가 노력 아니 ‘노오오력’ 해도 잘난 부모에게서 태어나지 않은 이상 내게 희망도 가능성도 없다는, 완전한 절망을 확인하게 한다.

이런 청춘들에게 과연 4ㆍ13총선은 무엇을 제시하고 있는가. 선거는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청춘들이 어떠한 삶을 사느냐에 달렸다. 그런데도 아무도 청춘들에 주목하지 않는다. 아예 안중에도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선거판이 이렇게 될 수는 없다. 그 흔한 사탕발림조차 없다. 비례대표로 청년을 당선권에 배치한 19대 선거에도 한참 못 미친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럴 수 없다. 두려워해야 한다. 이렇게 가다가 얼마 가지 못해 망한다. 청춘이 멍들고 쓰러지는데 지금 남아있는 알량한 자기 이익 탐닉해야 무슨 소용인가. 기성세대는 청춘들의 고통에 공감하기는커녕 우롱했고 발뺌만 해댔다. 이제 청춘이란 이름은 희망과 설렘의 낱말이 아니라 절망과 좌절, 원망과 포기의 서글픈 청동거울로 전락했다.

민태원의 ‘청춘예찬’을 기억하는 기성세대 많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그 한 문장만으로 가슴 뛰던 청춘을 살았다. 그런데 이 시대의 청춘은 ‘헬조선’에서 ‘흙수저’ 물고 절망하고 있다. 이번 선거가 미래를 위한 선택이어야 한다. 진흙탕 같은 선거판에서 그것이라도 건져야 한다. 곧 부활절이다. 지금 우리는 청춘들에게 부활의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 어두운 낱말을 버리고 펄펄 뛰는 꿈과 희망의 미래를 펼칠 이름을 돌려줘야 한다. 그마저도 못하면 살아도 산 게 아니다, 우리 모두.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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