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필립 글래스가 한국을 찾았다. 2003년 다큐멘터리와 클래식을 접목시킨 공연 ‘캇씨(qatsi)’ 시리즈를 들고 처음 내한한 지 13년만이다. 22~23일 서울 LG아트센터, 25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프랑스 시인 겸 영화감독인 장 콕토의 동명 영화를 바탕으로 만든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를 국내 초연한다.
글래스는 22일 서울 서초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교향곡, 오페라를 작곡하다가 80년대부터 영화음악도 만들었다. 90년대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만들어보고 싶었고, 그렇게 선택한 작품이 바로 장 콕토의 영화를 모티프로 한 음악 공연”이라고 소개했다. “어렸을 때 영화를 많이 봐서 항상 관심은 있었죠. 작곡가가 돼 작업하면서 궁금했던 점 중 하나가 ‘배우 연기는 왜 음악과 별개인가’였어요. 보통 영화 촬영이 끝난 다음 음악을 작곡했거든요. 촬영과 작곡을 동시에 하는 실험을 해보면서 자연스럽게 상업영화음악도 작곡했죠.”
글래스는 기교와 장식을 극도로 덜어낸 현대음악, 미니멀리즘의 거장으로 꼽힌다. 공연 연출가 로버트 윌슨, 싯타르 연주자 라비 샹카, 글램 록의 선구자 데이비드 보위 등과 협업하며 클래식음악의 경계를 넓혀왔다. 그는 “(음악을 전하는)매체가 달라지면 청중이 달라진다. 수천 명과 대화할 때와 한 명과 개인적인 말을 나눌 때 말투가 다른 것처럼 어디서 공연 하느냐에 따라 음악 표현방식이 다르다”고 말했다.
단순한 멜로디를 무한 반복, 변주하기 때문에 중독성 강한 그의 음악은 특히 영화와 행복하게 조우했다. 영화 ‘트루먼 쇼’(1998), ‘디 아워스’(2002) 등의 배경음악을 작곡했고 박찬욱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 ‘스토커’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음악작업에 참여할 상업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이 뭐냐”는 질문에 글래스는 “전화가 걸려오면”이라고 농담한 뒤 “금전적인 이유로 참여하지만 마틴 스코세이지, 우디 앨런 같은 능력있는 감독들과의 작업은 늘 흥미롭다”고 덧붙였다.
한국 초연하는 ‘미녀와 야수’는 장 콕토의 영화에 음악을 입힌 필름오페라다. 대사와 음악 등 모든 소리가 완전히 제거된 흑백영화가 상영되는 가운데, 글래스가 작곡한 음악을 필립 글래스 앙상블이 연주하고, 4명의 성악가가 대사에 맞춰 노래한다. “영화를 2~2분30초 단위로 30개 장면으로 쪼갰죠. 배우들이 발음하는 단어에 맞는 멜로디를 만들어서 각각의 장면을 오케스트라 음악에 맞춰 붙여 나갔죠. 지휘자는 메트로놈이 아니라 영화를 보면서 지휘합니다. 굉장히 논리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작업인데 이런 작업을 한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고요.”
22년이 지나도 여전히 혁신적인 이 작품의 서울 공연은 이미 80% 이상 티켓이 팔려나간 상태다. 25일 통영 공연 역시 매진을 앞두고 있다. “94년 초연 후 거의 매년 공연한 것 같다”는 글래스는 이 작품의 인기 비결에 대해 “삶과 죽음 같은 인간의 아주 본질적인 얘기를 묘파하는 작가인 장 콕토가 만든 영화의 힘”이라고 말했다. (02)2005-2114, (055)650-0400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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