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의 300곳 설문 결과
“성장기” 응답은 21%에 그쳐
“신사업 추진”도 단지 검토 단계
제품 출시ㆍ마무리 단계 10%뿐
일본의 히타치는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가전제품과 컴퓨터 등을 생산하며 안정된 수익을 내던 종합 전자기업이었다. 그러나 삼성 LG 등 한국기업들이 추격에 경쟁력을 잃고 글로벌 금융 위기까지 닥치자 2008년에는 7,873억엔(당시 환율 기준 약 10조2,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후 히타치는 주력사업이지만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디스플레이, PC, 가전 사업을 잇따라 정리했다. 대신 전력시스템, 정보통신(IT) 시스템, 철도 등 ‘사회 인프라 사업’을 미래 핵심사업으로 보고, 기존 사업 부문을 팔아 마련한 자금을 쏟아 부었다. 미래 신사업에 집중한 결과 히타치는 연간 5조원이 넘는 영업이익(2014년)을 내는 알짜 회사로 변신했다.
우리 수출 기업 10곳 중 8곳은 약 8년 전의 히타치처럼 주력 제품의 매출과 이익이 줄어드는 쇠퇴기나 정체기를 맞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정작 과감한 ‘신사업 찾기’에는 주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대한상공회의소가 가전ㆍ반도체ㆍ석유화학ㆍ컴퓨터ㆍ디스플레이ㆍ선박ㆍ섬유 등 13대 주력 품목 수출 제조업체 3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주력 사업이 ‘성숙기’라고 응답한 기업은 66.3%, ‘쇠퇴기’라는 기업은 12.2%였다. 성숙기는 주력 제품의 매출 확대가 더디고 가격과 이익은 점점 떨어지는 상태를, 쇠퇴기는 매출과 이익이 모두 감소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반면 매출이 빠르게 늘면서 높은 이익을 거두는 ‘성장기’라고 답한 기업은 21.5%에 그쳤다. 제품 시장이 새롭게 형성되는 ‘도입기’라고 답한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성숙기라는 응답이 높았던 업종은 컴퓨터(80%), 섬유(75%), 디스플레이(72.2%), 무선통신기기(71.4%), 철강(70.4%), 가전(70%) 등이었다. 쇠퇴기라는 응답은 선박(26.1%), 섬유(25%), 디스플레이(22.2%)의 순으로 높았다. 그나마 아직 성장기라고 본 사업분야는 자동차(50%), 반도체(50%) 정도였다.
기존 주력 사업의 정체가 심각한 기업들의 86.6%는 ‘신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응답했지만 실제로는 그저 생각뿐이었다. 가능성 검토단계(56.6%)이거나 구상단계(9.3%), 기술력 확보 등 착수단계(23.2%)인 기업들이 대부분이었다. 제품 출시 및 마무리 단계인 기업은 10.9%뿐이었다. 제조기업들이 새 기술을 개발해 사업화하는데 평균 32.5개월이 소요된다는 산업연구원의 분석을 감안하면 우리 기업들의 신사업 제품을 보기까진 최소 2,3년은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은 정보통신기술 융합(47.9%), 신소재ㆍ나노(28.6%), 에너지(26.1%) 등을 유망한 신사업으로 꼽았지만, 불투명한 수익성(49.5%), 기술과 노하우 부족(21.8%), 장기 전략 부재(15.8%) 때문에 신사업 추진에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기업들이 미래 신사업 시장에 대해 수익성이 불투명하다고 느끼고 있는 만큼 규제를 풀어 투자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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