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스케치북을 주면 마음껏 상상하면서 아무거나 잘 그리는데 어른이 된 우리는 그러지 못하잖아요. 동심에서 영감을 얻어서 그리는 대로 이뤄지는 제품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국내 최대 사물인터넷(IoT) 경연대회 ‘해카톤’에서 톡톡 튀는 제품으로 최고상을 거머쥔 대학생팀 ‘아이디어팩맨’은 어른들에게 ‘동심’을 돌려주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서울대 로봇 동아리 ‘시그마 인텔리전스’ 학생 4명과 다른 대학생 1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발광다이오드(LED)와 아크릴판, 투명한 종이(트레이싱지) 등을 차례로 겹쳐 겉으로는 A4 용지 크기의 종이 한 장처럼 보이지만 얇은 디스플레이인 ‘무제’를 만들어 누구도 예상치 못한 깜짝 수상의 영예를 거머쥐었다.
이 제품은 태블릿PC처럼 얇은 판형으로 마치 스케치북처럼 평소에는 은은한 흰색 불빛을 내뿜는다. 여기에 ‘날씨’나 ‘시간’이라는 글씨를 쓰면 해당 지역의 날씨와 시간을 인터넷으로 불러와 보여준다. 또 사전에 입력해 둔 이용자만의 고유한 문양을 손가락으로 그리면 불빛을 비추거나 스마트폰과 연결해 음악을 트는 등 명령을 수행할 수도 있다. 빅데이터와 기계학습(머신러닝) 기술을 적용해서 이용자의 생활습관을 기기가 파악해서 그에 맞는 정보를 제때 제공하는 것까지 가능하다. 팀에서 디자인을 맡은 이혜건(24ㆍ여)씨는 “IoT의 본질도 사람”이라며 “이 같은 철학을 관철해 감동을 주고 상까지 받게 돼 앞으로도 이렇게 해야겠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SK텔레콤과 인텔의 주최로 지난 19일부터 서울 을지로 사옥에서 무박 2일 일정으로 열린 IoT 경연대회 ‘해카톤’에서는 아이디어팩맨뿐 아니라 고등학생부터 직장인까지 66명이 15개 팀을 이뤄 각축을 벌였다. 해카톤은 컴퓨터 프로그래머 사이에서 ‘난이도 높은 프로그래밍’ 이란 뜻으로 쓰이는 ‘해킹’과 ‘마라톤’의 합성어로, 정해진 시간 동안 쉬지 않고 프로그래밍 실력을 겨루는 행사다.
대화 참가자들은 밤을 새우고 밥을 굶으며 집중력을 발휘한 끝에 스마트 등산스틱과 유모차, 생리대 거치대, 칫솔 거치대, 광고 노출형 휴지 배급기 등 당장 상용화할 수 있는 제품들을 쏟아냈다. 그래서 추상적인 개념의 무제가 최고상을 받자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이에 대해 심사위원인 최진성 SK텔레콤 종합기술원장(최고기술경영자)은 “무제는 일반 사람들이 필요한 가치를 잘 포착했고, 왜 이런 것을 만들었는지 이야기를 잘 구성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 외에도 서울 영등포고등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동반 참가, 좋은 성적을 거둬 눈길을 끌었다. 영등포고에서 기술 과목을 가르치는 김주현 교사는 노약자와 유아를 자동 추적하는 이동형 기기로 우수상을 받았고, 그의 제자 4명은 3차원(3D) 프린터 관리 솔루션으로 인텔 특별상을 각각 받았다. 개발에 참여한 이건모(17)군은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친구들과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 좋았다”며 “나중에 정보기술(IT)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되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이서희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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