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마나우스에서 산타렝까지 ‘해먹살이’ 29시간
*콜롬비아 레티시아에서 브라질 마나우스까지 3일간의 아마존 항해
에서 이어짐.
브라질에서의 첫 육지, 마나우스(Manaus)를 밟았다. 이제 두 차례가 남았다. 이곳에서 산타렝(Santarem)을 거쳐 아마존 강의 종착지인 벨렝(Belem)으로 가는 항해다. 이 항해가 끝나면 고등학교 3학년의 기말고사처럼 언제나 여정이라고 생각했던 인생을 '완수'했다는 기분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것이 덧없는 착각일지, 또 다른 도전의 시작일지, 무엇보다 해먹의 삶이란 무엇일지, 두고 보기로 했다.
일단 산타렝행 티켓부터 사야 했다. 항구 앞 좁은 통로에 진을 친 티켓 장수들 앞에 섰다. 편의점 야외에서 볼 법한 플라스틱 탁자가 각 여행사의 사무실이었다. 사기꾼 냄새가 풍겼다. 다음날 배편을 물으니 다짜고짜 "나이쓰! 퍼스트 클라스 보뜨!"란다. 흥정을 청하는 웃음을 팔아도 안 통했다. 실랑이에 이골이 난지라 상점마다 거부하던 찢어진 지폐를 한가운데 쓱 넣어 티켓을 샀다. 이 거지 여행자에게 조금의 아량을 베풀지 않은 것에 대한 은밀한 복수였다.
다음은 해먹 쇼핑이다. 명품 해먹의 원산지로 알려진 멕시코 메리다 지역에서 '좋은 해먹 사는 법'에 대해 주워들은 지식이 있었으나 써먹지 않았다. 우린 2회용 인스턴트 해먹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해먹과 선박에 고정할 밧줄을 사고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이면 잠시 이별해야 할 매트리스에 10분이라도 더 눕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든 준비는 완료되었다.
산타렝행 선착장은 마나우스행 선착장에서 멀찍이 떨어진, 미국으로 치면 할렘 한가운데 있었다. 선착장 입구에서 계단을 내려가 선박에 다시 오르기까지 어림잡아 약 3분. 극도의 긴장감 가운데 일시에 무음이 된 세상. 사람과 개, 진흙탕, 습기, 핫도그, 짐, 스쿠터, 모기,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덮치는 게임 트랙에 걸린 기분이었다. 그야말로 ‘물아일체’였다. 무조건 직진했다. 걸음이 점점 빨라지고 행동이 과격해졌다. 의지가 없으면 도태될지니! F/B ANA BEATRIZ IV란 선박명만 체크한 뒤 다리를 찢어 올라탔다. 그제야 뒤를 보았다. 땀이 배수관 터지듯 쏟아지고 모든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일종의 승전보였다.
사실 탑승 전 아마존에서의 ‘해먹살이’에 대해 미리 학습했다. 무조건 선착순으로 해먹 거는 자리를 차지하는 게 임자다. 일부 가이드북에선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법을 알려줬는데 정확히 말하면 덜 나쁜 자리를 차지하는 법이었다. '피하라'가 노하우의 8할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TV와 스피커, 매점 근처는 무조건 '피한다'. 최소 오후 10시까진 브라질인의 유흥이 지속되고, 잠들지 못한 올빼미족이 불시에 활동할 수 있다. 아마존의 밤바람은 칼바람이다. 선박 말머리나 창문 가까이는 비바람의 희생양이 되기에 '피한다'. 해먹에 누웠을 때 바로 위에 전등이 있으면 '피한다'. 정작 타보니, 이런 지식이 학교에서 배운 수학 문제와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다. 대충 자리를 잡았다. 번호가 적힌 고리에 밧줄로 연결해 해먹을 탑재했는데, 엉덩방아를 몇 번 찍는 몸 개그를 보여주는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선박은 '브라질 다시 보기'였다. 티켓 장수의 "나이쓰!"가 허풍이 아니란 물증이 수두룩했다. 레티시아-마나우스행이 3G였다면, 마나우스-산타렝행 선박은 LTE급이랄까. 프롤레타리아 해먹 이용자에게도 3곳에서 에어컨 수혜가 주어졌다. 2층 실내용 해먹 구간에 자리 잡거나 3층의 레스토랑에서 어슬렁거리거나 4층 영화관에서 시간을 축내거나. 공용 세면대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세면대였다. 아마존의 낙조가 시작될 때면, 일부러 세면대에 자리 잡았다. 이글거리며 떨어지는 해가 나의 검은 눈동자를 검붉게 물들이곤 했다.
해먹살이의 헤드라인 뉴스는 뭐니뭐니해도 지루함이다. 지루해서, 시간이 남아서 사소한 것에 기를 쓰고 관심을 두게 된다. 옆 사람은 어찌 시간을 보내는지 첩보 행각을 펼치기도 하고, 사람들이 우르르 어딘가로 나가면 자동반사로 뛰쳐나가게 된다. 시간을 앞당겨도 살았다. 아침을 먹고 나면 점심 생각이 났고, 저녁을 먹고 나면 아침 생각을 했다. 해먹에서 밤잠을 이루지 못해 낮에 간신히 쪽잠을 자면서도 그랬다. 물론 아마존 강의 신비가 없던 건 아니었다. 냉정과 열정 사이 같은 'Meeting of Waters'를 목격했다. 모래빛 아마존 강과 검은 네그로 강이 만나는 6km의 접점으로, 물과 기름처럼 섞이진 않으나 여느 강물처럼 흐른다. 그러나 선박에서 내린 후에도 아련해지는 건 가령 이런 기억이었다.
선박은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곧 정박했다. 선박 아래에선 오렌지 포대를 1톤 트럭에 싣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이런 일은 처음인 듯 산만한 덩치의 사내들이 비효율적으로 일하고 있었다. 오렌지는 강에 빠지고 땅에 떨어지는 게 더 많아 보였다. 이방인인 나야 볼거리라 하여도, 한국 같았으면 (승객 입장에서) 욕이 나올 상황이었다. '내가 왜 저걸 기다리고 있어! 고소할 거야!' 그런데 곁에 있던 아저씨가 히죽거리면서 소리쳤다.
"어이, 젊은이. 거기 강에 빠진 것 좀 던져봐."
그때부터 선박과 트럭 사이에서 오렌지를 운반하던 청년은 승객들에게 공짜 오렌지를 던지는 것에 집중했다. 예상 밖의 행동이라 신기해하는 내게 아저씨가 잘 익은 오렌지를 건넸다. 한입을 베어 무니 달고도 시었다. 나도 금세 히죽거렸다. 이건 뭐랄까. 겉핥기 같던 브라질인의 삶, 더불어 아마존의 삶에 아주 조금은 발을 들여놓은 기분이었다.
*브라질 산타렝에서 벨렝까지 여정이 이어집니다.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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