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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비서실장 ‘정권 개국공신’의 야당行… 朴 리더십에 타격

입력
2016.03.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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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비서실장 ‘정권 개국공신’의 야당行… 朴 리더십에 타격

이후 12년간 최측근으로 애증 관계

기초연금, 국민연금 연계 반대하며

복지부 장관 사퇴해 관계 틀어져

여권 내부선 “언제고 터질 화약고”

“더민주 아닌 김종인 택한 것” 시각도

“통치를 정치로 강변… 살벌한 배격”

진, 입당 회견서 朴대통령에 직격탄

새누리당을 탈당한 진영 의원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입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새누리당을 탈당한 진영 의원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입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공천탈락 후 새누리당을 탈당한 3선의 진영(서울 용산) 의원이 20일 결국 더불어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진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원조 비서실장’ 출신으로, 현 정부의 개국공신이기도 하다. 특히 여당 의원이 야당으로 이동한 것은 16대 국회 당시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 의원 일부가 자유민주연합으로 당적을 바꾼 뒤 16년 만의 일이다. 진 의원의 야당 행(行)을 여권이 충격이자 경고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다.

진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특정인의 지시로 움직이는 파당이 아닌, 참된 정당정치가 소중한 시대”라고 말했다. 비박계를 대거 낙천한 새누리당 상황을 꼬집은 얘기지만 결국 이번 공천을 좌우한 것은 ‘박심’이었다는 점에서 사실상 박 대통령을 겨냥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진 의원은 “그들은 통치를 정치라고 강변하면서 살벌한 배격도 정치로 미화했다”며 “제게 정치는 출세도 권력도 영광도 아닌 약속이자 희망이었지만, 제가 추구하는 초심의 정치는 완전히 좌초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한민국주의자로서 새 깃발을 들었고 그 깃발을 함께 할 동지를 더민주에서 찾았다”며 “권위주의에 맞서는 민주정치, 서민을 위한 민생정치, 통합의 정치를 이룩하는 데 마지막 힘을 보태겠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15일 오후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여성문화분과 국정과제토론회에 참석해 진영 인수위 부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15일 오후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여성문화분과 국정과제토론회에 참석해 진영 인수위 부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비서실장으로 박 대통령과 인연 시작

진 의원은 한때 박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고 아끼는 친박계 의원이었다. 2007년 박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맞붙었던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진 의원은 “현역 의원이 당 경선 캠프에 드나드는 건 부적절하다”는 소신 탓에 경선 지원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런 진 의원을 친박계 의원들은 못마땅해 했지만, 박 대통령만은 늘 “진 의원님은요?”라고 물으며 챙겼다. 그래서 ‘박근혜만 아는 친박’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박 대통령을 잘 아는 여권 인사들은 “진 의원은 대통령이 좋아할 요소를 모두 갖춘 인물”이라며 “입이 무겁고, 신사적이며, 꼼꼼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04년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이 그를 대표 비서실장으로 낙점하면서부터다. 1997년 15대 대선 당시 이회창 신한국당 대선후보의 정책특보를 맡은 게 정계에 입문한 계기지만, 2004년 이후엔 원근의 차이는 있었어도 늘 박 대통령의 곁을 지켰다.

세종시 수정안 입장차가 변곡점

12년 간 몇 차례의 위기도 있었다. 대표적인 게 2010년 ‘세종시 수정안’ 표결이었다. 박 대통령은 원안을,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친이계는 ‘수정안’을 밀어붙여 대립했을 때다. 그런데 당시 진 의원은 수정안에 찬성표를 던지며 박 대통령의 반대편에 섰다. 이후 진 의원은 사석에서 “당시 (다음 총선에서) 정치를 그만둬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럼에도 지역구 의원으로서 (용산) 주민들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고 돌이켰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진 의원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선 직전인 2012년 5월 이한구ㆍ남경필ㆍ이주영 의원이 원내대표 후보로 나서 치열하게 경쟁했을 때는 이한구 의원과 짝을 이뤄 정책위의장 후보로 출마한 진 의원의 지역구를 깜짝 방문해 간접적으로 자신의 의중을 드러내기도 했다. 현 정부의 밑그림을 그리는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에 진 의원을 낙점한 것도 믿음의 방증이었다.

핵심 참모의 야당행, 대통령 리더십 흠집

그랬던 관계는 진 의원이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청와대의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연계 방침에 반대, 자진사퇴를 결행하며 틀어졌다. 이후 진 의원은 “대통령은 내 진의를 아실 것으로 믿는다”며 사석에서도 말을 삼갔지만, 박 대통령은 ‘배신’의 감정을 ‘3ㆍ15 공천 학살’로 드러냈다는 게 여권의 해석이다.

물론 박 대통령이 이번 공천에 직접 관여했다는 증거는 없다. 진 의원을 밀어내고자 했던 친박 핵심인사들의 권력 암투의 결과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 진 의원을 두루 아는 여권 인사들은 “언제고 터질 화약고였다”고 말한다. 체질적으로 상명하복을 못 견뎌 하는 합리적 보수주의자인 진 의원과 ‘어디서 감히’식의 수직관계에 익숙한 박 대통령은 애초에 함께 갈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얘기다.

새누리당에선 진 의원이 야당으로 가긴 했지만 “더민주가 아닌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택한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두 사람은 2012년 대선 때 공약을 총괄하는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 위원장(김 대표)과 부위원장으로 호흡을 맞췄다. 진 의원의 본적과 김 대표의 원적이 전북 고창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두 사람이 등을 돌리면서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도 이미 적지 않은 흠집이 갔다는 평이다. 김 대표 역시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 후퇴’에 반발하면서 대통령과 멀어졌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 캠프에 몸담았던 한 여권 인사는 “원칙과 약속을 강조해온 대통령이 되레 이를 지키려 한 이들은 내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지은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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