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프랑스 혁명의 상징인 레퓌블리크 광장. 광장 중앙에 위치한 자유의 여신상 주변에는 관광객들과 시민들이 줄을 지어 테러 희생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추모하고 있었다. 끔찍했던 테러가 발발한 지 4개월이 훌쩍 지났는데도 이곳에는 여전히 여러 나라 관광객들이 놓고 간 각국 국기와 추모 편지, 인형, 그리고 꽃과 양초들이 즐비했다.
광장 한쪽에서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민ㆍ사회 단체들의 각종 캠페인이 진행됐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스케이트 보드 기술을 연습하는 젊은이들로 활기가 넘쳤다. 기자가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공공 장소에 오는게 무섭지 않느냐”고 묻자 델핀 르맹시에 종글레씨는 “다에시(IS를 낮춰 부르는 이름)가 테러 공포속으로 밀어 넣으려 해도 우리는 꿈쩍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더 자주 가고 추모해서 ‘우리는 테러가 무섭지 않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특히 당시 총기 난사로 5명이 사망했던 카페 ‘라 본 비에르’의 모습은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한국 같았으면 진즉 폐점했을 이곳에는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손님들로 성업 중이었다. 우연히 만난 한 한국인은 “확실히 파리지앵들은 단단한 국민성을 지닌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시민 뤽 프랑코포니 씨는 파리를 상징하는 문장(문장)을 거론했다. 문장에는 프랑스를 상징하는 3색(적색, 청색, 백색)과 함께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에 큰 배가 기우뚱거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Fluctua nec mergitur”(흔들릴지언정 결코 침몰하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다. 테러에 희생돼 잠시 흔들릴 순 있지만 결코 테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테러 당시 90명이 사망하면서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냈던 바타클랑 극장 앞은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극장 입구는 바리케이드로 막힌 채 폐쇄돼 있었고, 당시 테러범들이 난사했던 총탄 자국과 깨진 유리 자국은 더 이상 파손되지 않도록 테이프가 얼기설기 붙어있었다. 바리케이드 앞에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한동안 폐쇄한다”는 내용의 작은 알림 공문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극장 옆 벽면에는 누군가가 써 놓은 “Je suis Paris(내가 파리다)” 는 낙서가 보였다. 지난해 1월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 테러 이후부터 이어지는 파리 시민들의 ‘Je suis Charlie(내가 샤를리다)’ 저항 의식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물론, 시민들의 삶은 다소 불편해졌다고 한다. 관공서와 다중 이용 공공시설은 물론, 시내 사설 백화점과 관광지 등을 출입하려면 일일이 군ㆍ경의 검문ㆍ검색을 받아야 한다. 시민 Y씨는 “가방 안을 조사하고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는 바람에 다소 귀찮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테러 위협을 막아 낼 수만 있다면 잠깐의 불편함에 관용(톨레랑스)을 베풀 수도 있다는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패트릭 카네르 도시청년체육부 장관은 “시민 편의와 대 테러 방어책 사이에 균형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리=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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