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의 지능 판별하는 튜링 테스트
인간 속이는 대화 가능하면 통과
2014년 러 슈퍼컴퓨터 통과했지만
사람 말 이해 못하고 흉내만 냈을 뿐
대화의 맥락 알고 대답해야 강한 AI
튜링은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암호학자, 이론생물학자다. 1945년에 그는 튜링 기계를 고안했다. 튜링 기계는 수학에서 알고리즘 방식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은 어느 것이든 다 처리해낼 수 있는 기계이며, 디지틀 컴퓨터는 본질적으로 빠른 튜링 기계다.
튜링(1912-1954)의 어머니는 인도에서 그를 임신하고 런던에 돌아와서 그를 낳았다. 출생 연도로 따져서는 박정희 및 케네디(둘 다 1917년생)와 거의 같은 세대인 그는 1952년에 당시 영국에서 범죄로 취급되던 동성애 혐의로 체포되어 형벌에 처해졌다.
징역형과 화학적 거세 중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던 그는 하던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서 1년간 강제로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 주사를 맞았는데,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등의 증상을 겪다가 결국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먹고 자살했다. 베어 먹은 사과 모양의 애플사 로고가 바로 이 사과를 뜻하는 게 아니겠느냐 라는 추정이 유력하다.
튜링은 튜링 테스트를 제안했다. 이것은 기계에 지능이 있는지를 판별하는 테스트인데, 요지는 기계가 사람처럼 대화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는 1950년 발표한 “계산 기계와 지능”이라는 논문에서 튜링 테스트의 첫 단계로 모방 게임을 제안한다. 질문자, 남자, 여자 각각이 서로 멀리 떨어진 독립된 방에 있고 원격 터미널과 같은 중립적 매체를 통해서만 서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상황이다. 질문자는 둘 각각에게 질문하면서 누가 남자고 누가 여자인지 알아내야 한다. 반면에 남자는 자기가 여자라고 질문자를 속이는 게 이 게임의 목표다. 목소리로 성별을 알아내지 못하도록 답은 글로 쓰이거나 타이핑된다. 혹은 텔레타이프를 통해야만 한다.
튜링은 튜링 테스트의 두 번째 단계에서는 남자를 기계로 대체시킨 다음에 누가 사람이고 누가 기계인가를 판별해내는 것으로 게임의 목표를 변경한다. 만약, 질문자가 남녀 모방 게임에서 범할 수 있는 것처럼 실수를 해서 컴퓨터에게 속는다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상정하면서 이렇게 묻는다. “기계는 생각할 수 있을까?”
요컨대, 만약 질문자가 대답하는 존재가 사람일 거라고 판단을 내린다면, 이 기계, 즉 컴퓨터는 지능을 갖고 있다고 간주해야만 한다는 게 튜링의 주장이다. 튜링의 목적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기계를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 논문에서 튜링은 기계와 사람 사이에 오갈 수 있는 대화를 가상적으로 만들어서 제시했다.
물음: 스코틀랜드의 포스강 다리를 소재로 소네트를 지어 주세요.
대답: 그건 좀 봐줘요. 나는 시를 짓지 못해요.
물음: 34957에 70764를 더하면?
대답: (30초쯤 멈추었다가 답을 준다) 105621.
물음: 체스를 둘 줄 아세요?
대답: 그럼요.
물음: 저는 킹이 하나 남았고 E8의 자리에 있어요, 당신은 킹이 E1의 자리에, 룩이 A1 자리에 있어요. 당신 둘 차례인데, 어떻게 하실래요?
대답: (15초 뒤에) 룩을 A8자리로 보내서 “장군”이요.
이 가상적 대화의 포인트는 컴퓨터가 인간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일부러 계산할 때 시간을 끌고 계산을 틀리게 해서 답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그럴 정도로 정교한 컴퓨터라면, 그래서 결국 질문자가 대답하는 존재를 인간으로 여긴다면, 이런 테스트를 통과한 컴퓨터는 지능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게 튜링의 논변이다.
1965년에 미국 MIT의 컴퓨터 과학자 요제프 바이젠바움은 자판을 통해 영어 문장을 입력하는 이용자와 대화를 하는 일라이저(ELIZA)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일라이저는 심리치료 의사를 흉내내는 챗봇(chatbot, 채팅 로봇)이다. 일라이저는 대화 내용을 실제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이용자가 먼저 던진 말에서 키워드를 따와서 그것으로 그럴 듯한 문장을 만들어서 이용자와의 대화를 이어 나간다.
사람들은 몇 분 뒤에 일라이저가 진정으로 사람 말을 이해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전까지는 이 가짜 의사에 감정적으로 동조되고는 했다고 한다. 저명한 수학자이자 논리학자인 마틴 데이비스가 일라이저와 나눈 대화에서 일라이저의 마지막 말은 이렇다: “안녕히 가십시오. 75달러입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6월에는 영국 왕립협회에서 열린 ‘2014 튜링 테스트’에서 ‘유진 구스트만’이라는 러시아에서 2001년에 처음 개발된 슈퍼컴퓨터에서 돌아가는 ‘유진’이라는 프로그램이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유진은 5분 길이의 텍스트 대화를 통해 심사위원 중 33% 이상에게 ‘유진은 진짜 인간’이라는 확신을 줬다는 것이다. 64년 만에 컴퓨터 프로그램이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것이다.
유진은 우크라이나에 사는 13세 소년인 것처럼 사용자들과 대화를 나누게끔 설정되었었다고 한다. 하지만 유진과 실제로 대화를 해 본 사람에 의하면, “어디서 왔니?”라고 물으면 “나는 우크라이나의 오데사시 출신이야”라고 답하지만, 곧 이어서 “우크라이나에 가본 적 있니?”라고 물으면, “우크라이나? 거긴 가본 적 없어”라고 한다는 것이다.
유진은 비록 그 이전과는 달리 성능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본디 챗봇이라서 사람의 말이나 대화를 실제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단지 인간의 대화를 흉내 낼 뿐이다. 유진이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인 인공지능 전문가들도 많다. 즉 진짜 인공지능이라면, 예컨대 박근혜 대통령이 나오는 TV 저녁 뉴스를 보고서 왜 박 대통령이 대구와 부산에 갔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강한 인공지능이라고 한다.
알파고는 이세돌을 이겼다. 그렇다면, 과연 인공지능 컴퓨터는 바둑을 둘 줄 아는 것인가. 바둑 두기에 관한 한,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봐야 하는가. 바둑에 관한 한, 현재 수준의 인공지능 컴퓨터는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갖고 있는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우리가 바둑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달려 있다. 바둑 둔다는 것을 단지 좁은 의미에서 이기는 수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정한다면, 알파고는 바둑을 둘 줄 알며, 심지어 이세돌을 이길 정도의 실력이다. 알파고는 과거보다는 확실히 더 발전된 알고리즘과 엄청난 컴퓨팅 파워를 바탕으로 해서 이세돌을 이겼다.
하지만, 바둑 두기를 다르게 정의할 수도 있다. 한 판의 바둑은 두 사람 사이에 바둑 둘 것이 제안되고, 서로 그 제안에 응한 뒤, 만약 서로의 실력이 같다면, 돌을 가려서 누가 먼저 둘 것을 결정한 다음에야 바둑은 겨우 시작된다. 또, 돌을 가리기 위해서는 돌을 집어서 판 위에 올려놓아야 하며, 판 위에 놓인 바둑돌 수를 셀 줄 알아야 한다. 알파고는 이 모든 것을 전혀 하지 못한다. 알파고는 바둑을 시작조차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알파고의 자본가 및 기술자들은 이런 잡다한 모든 것들이 현재의 기술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응수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공지능 로봇에 관한 한, 빅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서 바둑에 좁은 의미의 이기는 수를 통계적으로 찾아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건 바로 인간처럼 걷는 것이다. 바둑을 두기 위해서는 먼저 걸어서 바둑판 있는 자리까지 와야 한다.
튜링 테스트 자체로 돌아가서 말한다면, 이 테스트에서 튜링은 기계가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서 실질적으로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제약을 가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단지 기계가 질문자를 속여 넘긴다는 것이다.
즉, 기계가 오가는 말의 의미와 문법적 규칙을 이해하고 그런 바탕 위에서 언어적 상징을 조작하여 성공적인 답변을 내놓는다는 것이 아니다. 기계가 있는 방 안에서, 또 기계 안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든 간에, 기계가 내놓는 답이 너무 그럴 듯해서 그저 질문자가 속아 넘어가기만 한다면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하겠느냐 라는 게 튜링의 물음이다.
튜링의 생애를 소재로 한 2014년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주연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맡았다. 튜링의 목소리가 컴버배치처럼 섹시한 중저음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튜링의 사진을 보면 그가 훈남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2차대전 때 그는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는 일을 했는데, 그 때문에 평생 동안 영국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았다. 이런 감시도 앞으로는 인공지능 로봇이 맡아서 하게 될 것이다. 어차피 인공지능의 세상이 오는 것이라면, 국회의원 공천부터 맡아서 하는 게 좋겠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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