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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둑에서 삶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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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둑에서 삶을 배운다

입력
2016.03.1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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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아마 5단? 국회 기우회장)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결은 인류의 위대한 도전이었다. 비록 이 9단이 승부에선 졌지만, 인공지능이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창의성이 지닌 무한한 가치를 확인시켜주었기에 국민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아름다운 패배였다.

서양의 체스는 상대방의 왕을 죽여야만 이기는 제로섬 게임이지만 바둑은 흰 돌과 검은 돌이 상생, 공존하며 모두가 승리 할 수 있는 게임이다. 바둑을 두면서 우리 정치권도 흑과 백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상생의 정치를 펼친다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바둑은 또한 승패를 다투는 여느 게임과는 달리 상대방과 소통하면서 복기를 한다. 자기 자신만의 승리를 좇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국민과 진지한 성찰이 더해진 소통을 하는 ‘복기의 정치’를 해야 국가와 국민을 위한 ‘섬김의 정치’도 가능하고 믿는다.

박원순 서울시장(아마 5급)

어릴 적 시골집 사랑방에서 펼쳐지던 반상 위 흑돌과 백돌의 향연은 밤하늘을 점점이 수놓던 별들이 내뿜던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나는 농사일로 굽은 아버지의 등 뒤에 바짝 들러붙어 반상 위 별들의 자리다툼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바둑이 우주의 원자보다 많은 경우의 수를 지닌 게임이라는 사실을 안 이후 검사로 출발해 시민운동가, 서울시장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내 인생의 수많은 성공과 실패, 도전과 좌절, 위기와 기회의 도정은 이미 어릴 적 시골집 사랑방의 대국으로부터 기인된 것일 수 있겠다.

바둑은 상대와의 싸움이면서 동시에 자신과의 싸움이다. 싸움터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고독하다. 알파고와의 싸움에서 이세돌 9단은 얼마나 고독했을까. 나 역시 오늘 천만 시민이 꿈꾸는 천만 가지의 수, 그 한 수 한 수를 소중히 생각하면서 ‘함께 행복한 삶의 특별시 서울’을 만드는 길에 다시 첫 돌을 놓는다.

김병익 문학평론가(아마 3급)

나는 자칭 3급이다. 바둑집에 가면 몇 급이 될지 모르지만 친구들에겐 늘 3급 행세를 한다. 만년 3급이다. 독일의 소설가 헤르만 헤세의 장편소설 ‘유리알 유희’에는 인간의 다양한 지식이 결합된 고도의 정신적인 게임이 등장한다. 어떤 놀이인지에 대해선 구체적인 설명이 없고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게임이지만, 만약 현실에 있다면 가장 가까운 게 바둑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바둑은 도(道)가 되기도 하고 예(藝)가 되기도 하고 기(技)가 되기도 한다. 중국에선 도로 통했고 일본에선 예술이었으며 한국에선 테크닉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이 세 가지 측면을 모두 갖춘 바둑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게임 중 가장 단순하면서 가장 복잡한 게임이 아닌가 한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은 그 승패를 넘어 인류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사람이 스스로 창조한 기술을 따라가지 못할 때, 그것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는 앞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남을 것으로 본다.

김장훈 가수(아마 5단)

어린 시절 천식에 악성 빈혈로 몸이 약해 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했던 내게 유일한 즐거움이 바둑이었다. 병원에서 의사선생님과, 때론 동네 세탁소 아저씨와 바둑을 두면서 나는 사람을 만났고 세상을 배웠다. 우주의 원자보다 많다는, 늘 새로운 수 대결이 좋았다. 바둑을 두다 상대의 묘수가 나오면 전율이 와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내 방식대로 바둑판에 집을 지을 수 있고, 상대와 치열하게 싸우다가 타협도 할 수 있다. 현실에서 하지 못하는 모든 일이 반상 위에선 가능하기에 나는 바둑을 둔다.

노래를 하면서 혹은 일상에서 위기가 닥쳤을 때면 언제나 바둑에서 십계명과 같은 위기십결(圍棋十訣)을 떠올린다. 공격하기 전에 나를 먼저 돌아보라는 바둑의 공피고아(攻彼顧我)는 독도 홍보전략의 출발이었다. 캐나다 토론토 도서관에 한국서적 구입비로 2만 달러를 기부하게 된 것도, 우리가 해외에 독도를 알리는 노력을 너무 등한시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허정무 프로축구연맹 부총재(아마 5단)

반상 위에서 벌어지는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는 바둑과, 치열한 몸싸움으로 격렬하게 펼쳐지는 축구 사이에는 공통점이 참 많다. 그래서 나는 바둑을 좋아한다. 바둑의 위기십결 가운데 상대를 공격하기에 앞서 자신의 허점을 살핀다는 공피고아와, 상대가 강한 곳에서는 자신을 보강하라는 피강자보(彼强自保)는 축구 전술로도 곧 바로 적용할 수 있다. 축구 경기 중에 공격에 앞서 수비를 단단히 하고, 상대가 강한 곳에서는 전열을 가다듬어 차근차근 공격을 전개해나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바둑을 두며 판세와 수를 꿰뚫는 것은 축구에서 넓은 시야를 갖고 빈 공간과 그라운드 전체를 바라보며 전술을 펼쳐야 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스포츠의 세계는 어느 종목이나 정신적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바둑을 두면 마음의 안정을 얻게 된다. 내가 바둑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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