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미스코리아 중 최고 미인이라고요? 글쎄요. 아무래도 제가 요새 활동을 많이 하고 있어서, 매체를 통해 자주 보이니까 그런 게 아닐까요.”
1988년 미스코리아 진 김성령(49)이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역대 미스코리아 중 가장 아름다운 인물로 꼽혔다는 소식에 쑥스러운 듯 이렇게 말했다. SBS 주말드라마 ‘미세스캅 2’ 촬영 도중 미스코리아 60주년 축하를 위해 잠시 짬을 낸 김성령은 11일 경기 고양시 SBS일산제작센터에서 “미스코리아 진 당선은 내 인생을 바꿔놓은 사건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땐 미스코리아 당선이 정말 인생을 바꿀 만한 사건이었죠. 평범한 여성이 나라를 대표하는 미인이 되는 거잖아요. 평생 미스코리아라는 영광을 등에 업고 살아갈 수 있었죠. 제가 살아오는 데 큰 힘이 됐어요. 날개를 달아 준 거죠.”
김성령은 미스코리아에 나가기 전만 해도 막연히 방송인을 꿈꾸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의 지인이었던 패션 디자이너의 소개로 만난 미용실 원장이 적극 추천했지만 처음엔 ‘내가 무슨 미스코리아냐’며 나가지 않았다”며 “다음해인 1988년 나갈 때도 최종 8명 안에만 들면 영광이겠다 생각했지 진이 될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미스코리아 최종 대회를 앞두고 크게 부상을 당해 고생한 일화도 덧붙였다. 그는 “대회 전날 넘어지며 의자 모서리에 부딪혀 신장을 크게 다치고 하혈까지 했다”며 “리허설도 못한 채 진통제를 먹고 몽롱한 상태로 나가 당선이 됐다”고 했다.
전문 연예기획사라는 개념이 없던 1980년대, 미스코리아는 방송계로 진출하는 등용문이었다. 학생 시절 교내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아나운서나 리포터를 꿈꾸던 그는 당선 직후 당시 대표적인 TV 연예정보 프로그램이던 KBS ‘연예가중계’ MC 자리를 꿰찼다. 배우가 된 건 몇 년 지난 뒤였다. 1991년 강우석 감독의 영화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가 데뷔작이다. 그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아나운서 역할이라는 말에 솔깃해 출연했다”며 “그 때 실패했다면 안 했을 텐데 대종상 신인여우상도 받고 뭔가 운명처럼 일들이 풀려갔다”고 기억을 반추했다.
김성령은 ‘미스코리아 진’이라는 명예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고 했다. “미스코리아라서 내 마음대로 살지 못했던 적도 있었어요. 미스코리아의 명예와 이미지를 실추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말과 행동이 늘 조심스러웠죠. 한창 즐겁게 살아야 할 20대 때 그런 중압감에 갇혀 살았던 건 조금 아쉬워요. 연기를 막 시작할 때도 미스코리아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 부담스러웠죠. 미스코리아라는 말이 듣기 싫었던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과정을 지나고 보니 내가 얻은 게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게 됐고 지금은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김성령은 여느 여배우와 달리 40대에 접어들며 더욱 활발한 연기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엔 또래 여배우들에게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 드라마 단독 주연 자리를 연이어 차지하고 있다. ‘경찰 아줌마’의 활약상을 그린 ‘미세스캅2’는 김성령만의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켜주는 작품이다. 40대의 연륜과 20대의 미모를 동시에 갖고 있는 희귀한 매력에 무르익은 연기력까지 더해져 배우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연기가 즐겁냐고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아직도 어려워요. 이쯤 되면 연기를 하면서 카타르시스도 느끼고 해야 하는데 그런 경지에 오르려면 멀었나 봐요. 연기가 늘질 않으니 이제 그만해야 하나 봐.(웃음)”
김성령은 올해로 60주년을 맞은 미스코리아 대회가 유행을 따르기보다 전통에 충실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는 “요즘 많이 보이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따라가기보다 진정한 아름다운 여성을 뽑는 전통적인 방식에 충실한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고 제안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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