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서 제대하고 난 뒤인 2007년 집안 형편은 더 기울었다. 월세(30만원)는 석 달이 밀려 집주인의 독촉이 시작됐다. 서울 면목동의 허름한 집에 얹혀 살던 사내의 통장에 남은 돈은 4,800원. 2002년 낸 1집 수록곡의 한 달 저작권료로 들어온 게 수입의 전부였다. 장남인 그는 음악에만 매달릴 수 없어 신문 배달부터 자동차 가스 충전소 아르바이트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음악인으로서 꿈을 접고 생활 전선에 뛰어든 아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던 어머니는 “하고 싶은 걸 하라”며 오히려 그를 다그쳤다. 사내는 ‘드릴 것이 없었기에 그저 받기만 했죠. 그러고도 그땐 고마움을 몰랐죠’란 노랫말에 모정을 향한 마음을 담아 ‘엄마’란 곡을 만들었다. 사내의 이름은 라디(이두현·36). 그는 이듬해인 2008년 ‘엄마’가 실린 2집으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라디는 “노래만 들으면 다들 효자인 줄 아는데 아니다”라며 옛 얘기를 꺼냈다. 그는 2집에 실린 또 다른 수록곡 ‘아임 인 러브’까지 반응이 뜨거워지자 월세 신세를 면했다. ‘아임 인 러브’는 브라운아이드걸스 멤버인 나르샤가 리메이크하고, 피겨 요정 김연아가 방송에서 불러 화제가 된 노래다.
라디는 데뷔 후 ‘얼굴 없는 가수’처럼 살았다. 방송에도 좀처럼 나가지 않았다. “무대에 서서 노래하는 것보다 뒤에서 곡을 만드는 걸 우선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데뷔 14년 만에 울타리를 나왔다. 지난 12일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단독 공연(1,000석 매진)을 열고 팬들과 소통했다. “방송 울렁증이 있다”는 라디는 “유희열에 직접 연락해”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 출연도 부탁할 정도로 방송 활동에도 열정을 보이고 있다. 이달 ‘싶은데’란 신곡을 낸 그는 “6월 안에 다른 신곡도 낼 계획”이다. 첫 단독 공연의 반응이 좋아 올 안에 추가 공연도 고려 중이란다. 라디는 “마치 데뷔하는 기분”이라며 의욕을 보였다. 이런 변화는 “7년 동안 운영하던 회사(리얼콜라보) 운영을 포기하면서” 시작됐다.
“브라더수 등 후배들 지원하며 제 가수 활동에 집중할 여력이 없었어요. 빚 갚느라 고생도 했고요. 그러다 지난해 11월 회사 문을 닫으며 음악인으로서 방향성을 고민하다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오랫동안 공연하며 살아있는 음악인으로 남고 싶었거든요.”
라디는 거리의 ‘춤꾼’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춤을 추기 시작한 그는 보아와 소녀시대 등의 안무를 짠 심재원 SM엔터테인먼트 안무 감독의 “춤 스승”이었다. 라디는 “내가 직접 만든 비트에 춤을 춰보자란 욕심이 들어 고등학교 3학년 때 작곡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했다.
세상의 고통도 쉬 넘기지 못한다. 라디는 세월호 사건 희생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14년 7월 ‘아직도(0416)’란 노래를 냈다. 그는 “세월호 사건 당일 뉴스를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아 슬픈 마음에 바로 곡을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목 속 ‘0416’은 세월호 사건이 벌어진 날이다. 최근 낸 싱글 앨범 ‘싶은데’의 커버 사진은 입양한 고양이 사진을 썼다. 라디는 “SBS ‘동물농장’에서 버려진 고양이의 사연을 보고 가슴이 아파 작가에게 직접 그 고양이를 분양 받아 키우고 있다”고 싱글 앨범에 얽힌 사연을 들려줬다.
앞으로 라디는 “다양한 음악인들과 협업을 통해 음악적 보폭을 넓힐 계획”이다. “바람요? 부지런히 그리고 자주 찾아 뵐게요. 공연도 계속할 생각인데 이런 도전에 저 또한 설레네요.”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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