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성리학의 공리공론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왜 그게 공리공론인지, 진짜 그것 때문에 망했는 지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어요. 물론 교조화된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이 없을 수는 없지요. 그러나 우리는 과연 주희란 인물을 알고 있는지, 이론의 계보가 아니라 ‘인물과 생활세계’로 비춰보자는 게 바로 이 책입니다.”
16일 서울 논현동 콜라보서점 북티크에서 열린 56회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 북콘서트에 번역부문 수상작 ‘주자평전’(역사비평)을 번역해낸 김태완 지혜학교 철학교육연구소장의 말이다.
김 소장은 ‘생활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주희가 머물렀던 중국 무이산 일대 절경들을 슬라이드 화면으로 보여줬다. 따끔한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주희는 이 곳 풍경을 노래한 ‘무이구곡가’를 남겼습니다. 이를 본 조선 성리학자들도 무슨무슨 구곡가니 하는 글들을많이 남깁니다. 그러나 무이구곡가의 핵심은 어쩌면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데 있을 지도 모릅니다. 물의 근원을 찾아가듯 학문의 근원을 찾아가는 자세, 그게 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겁니다.”
지금이야 주희라면 ‘봉건 지식인’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혁신적 인물이었음을 강조했다. 김 소장은 “당ㆍ송교체기 이후 중국 사회의 중심은 ‘귀족’에서 ‘교양을 갖춘 중소지주’로 넘어가는 데 이들이 바로 사대부”라면서 “교양과 능력을 겸비한 유교적 합리주의자가 주희의 본 모습”이라 말했다. 사창을 설치하고 수리시설을 정비하고 조세감면 정책을 내놓는 등 지방관 시절 주희의 행적은 이런 합리적 면모의 일부라는 얘기다.
김 소장은 이를 “존재론적 질문에 맞닥뜨린 선비들의 책임의식”이라는 말로 요약했다. 여기엔 불교 영향이 있다. 당나라 때 전래된 불교는 옛 유교에서 찾아볼 수 없던 ‘존재’, ‘실제’, ‘본질’ 등의 개념을 중요한 화두로 제시했다. 이 새로운 도전에 모두가 취했고 주희도 마찬가지였다. 김 소장은 “이 때문에 성리학을 두고 ‘유교의 가면을 쓴 불교’라 평가하거나 이기론을 두고 ‘화엄학에서 빌려왔다’고 하는 학자들도 있으나, 주자는 ‘경’(敬)을 화두로 유학으로 되돌아왔다고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희가 주인공이어서인지 이날 강연장에는 희끗희끗 흰머리를 날리는 중장년층들이 많았다. 이들은 “한중일 3국 가운데 중국, 일본과 달리 한국만 유독 성리학이 절대적으로 강력했었던 이유가 있느냐” “학자와 정치인의 분업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 패착 아니었을까” “불교 영향은 어느 정도나 되는가” “귀신을 부정하는 유교가 제사는 왜 그리도 중시하는가” 등 다양한 질문을 쏟아내며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다음 북콘서트는 23일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편집부문 공동 수상작 ‘자기록-여자, 글로 말하다’를 펴낸 부수영 나의시간 대표가 진행한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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