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루하는 메이저리그 선수/사진=연합뉴스
메이저리그에서 도루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2015시즌 전체 도루 수는 2,505개로 지금보다 무려 6개 팀이나 적었던 1974년(2,488개) 이후 41년 만에 최저였다. 지난 시즌 경기당 도루 수는 0.52개로 1973년 이후 가장 낮았고 2014년 대비 259개가 줄었으며 2012년과 비교해선 724개나 감소했다.
류현진(29ㆍ다저스)의 소속팀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LA 다저스 같은 경우는 2014년 내셔널리그(NL) 1위(138개)였던 팀 도루가 지난해 반 토막(59개) 이상으로 줄어들었다.
도루의 현저한 감소 추세는 도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투수들의 딜리버리(투구 수 팔 휘두르는 동작)나 포수의 송구시간이 어느 날 눈에 띄게 빨라져 생긴 현상이 아니다. 주자들의 발이 갑자기 느려져서도 아니다. 아메리칸리그(AL)의 한 고위 관계자는 그 주된 원인을 방대한 정보의 양에서 찾았다. 그는 ESPN과 인터뷰에서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간 정보의 양이 결국 도루가 줄어드는 현상으로 연결됐다"고 말했다.
이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분석이다. 통산 도루 733개로 이 부문 역대 6위에 올라있는 메이저리그 대도 빈스 콜먼(54)은 전성기 시절 좌완 프랭크 비올라가 글러브를 펼치면 체인지업이 들어오고 데이브 스튜어트가 세트 포지션 상태에서 글러브를 머리 위로 올리면 스플리터, 가슴 밑으로 내리면 패스트볼(빠른공)이라는 식의 모든 투수들이 가진 고유의 버릇들을 잘 캐치해 큰 이득을 누린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사전에 다 분석되고 투수들이 즉각 고치고 대응하면서 점점 더 주자들의 발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
또 하나는 2000년대 이후 야구단 운영의 핵심요소 중 하나로 떠오른 세이버 메트릭스(야구통계학)의 관점에서 본 도루의 가치 하락이다. 득점 생산에 최우선 가치를 두는 세이버 메트릭스의 특성상 자칫 아웃카운트 한 개와 맞바꿔질 수 있는 도루는 그 값어치를 온전히 평가 받지 못하는 경향이 크다. 세이버 메트릭스에서 도루 실패는 곧 문책의 대상이나 다름없다고 강하게 경고한다. 상당한 체력 소모를 감수하며 도루를 아무리 많이 쌓아도 구단에서 제대로 인정을 안 해주는 데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어지는 악순환이다.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뤄야 할 스포츠 경기에서 상대편의 것을 훔친다는 의미인 도루는 야구 종목에만 있다. 스포츠맨십에 어긋난다는 일각의 지적을 뒤로 하고 오랫동안 야구 역사의 한 부분으로 함께 해왔다. 도루라는 용어조차 없던 1863년 네드 커스버트는 야구 경기에서 상대 베이스를 훔친 최초의 선수로 등록됐다. 이후 논란 끝에 1870년 도루(steal)라는 공식 명칭으로 불리게 된다. 1880년대 후반엔 1루 주자가 단타로 3루까지 진루했을 시 한 베이스를 더 간 1루 주자에게 도루가 주어지던 시절도 있었다.
이렇듯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루는 투수의 허를 찌르고 빠른 발로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다는 점에서 야구를 보는 또 다른 재미였다. 이런 저런 이유로 도루가 홀대 받고 있다는 건 누군가에겐 슬픈 현실일 수 있다. 콜먼은 "현역 시절 루상에 서면 최고의 도둑이 되는 데 온 정신력을 집중했다"며 "도루 하나로 경기를 지배했던 시절이었다. 나로 인해 투수들은 공을 빼고 그런 식으로 10개는 더 던져야 할 때도 있었다. 내가 투수들의 정신을 흐트러뜨리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확신한다"고 회상했다. 올드스쿨(구식) 야구팬들에게는 야구계가 숫자놀음에 빠진 나머지 도루가 가진 생동감과 장점들을 잃어가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정재호 기자 kemp@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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