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가분합니다. 하지만 대학에 남아 있는 교수, 학생, 직원들에겐 미안한 마음도 있습니다.”
지난달 정년 퇴임한 강내희(65) 전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30년간 지켜온 강단을 떠나는 심정을 이렇게 밝혔다. 인터넷 매체 ‘참세상’ 이사장을 맡고 있는 강 교수는 10일 서울 천연동 참세상 사무실에서 만나 “김영삼 정부 시절 5ㆍ31 교육개혁안 이후 교수와 학생 관계가 교육상품 공급자와 소비자 관계로 바뀌어버렸다”며 “이런 상황을 그대로 둔 채 학교를 떠나게 되니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교수, 교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30년간 진보적 문화운동을 펼쳐온 문화이론가이자 사회운동가다. 국내 최초 문화이론 전문지인 계간 ‘문화/과학’을 1992년 창간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고, 진보좌파 학술문화 행사 맑스코뮤날레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그는 “학교에 있을 땐 교수로서 해야 할 일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못했는데 이제 그때 못한 저술활동과 공부를 하고 후배ㆍ학생들과 세미나도 하고 싶다”고 은퇴 후 계획을 밝혔다.
강 교수의 퇴임을 맞아 저서 2권과 동료, 후배 학자들이 헌정한 책 1권이 지난달 말 일시에 출간됐다. 저서 2권 중 ‘인문학으로 사회변혁을 말하다’는 강 교수가 지난 30년간 쓴 글을 중 19편을 골라 묶은 것이고, ‘길의 역사’는 길에 대한 강 교수의 깊은 사유를 보여주는 책이다. “1990년대 중반쯤 민예총 문예아카데미에서 자본주의 시각환경에 대해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다 10년이 지나 중대 영화학과에서 제안한 연구 프로젝트로 길의 역사를 연구한 적이 있어요. 그때 쓴 보고서가 시작이 됐지요.”
‘길의 역사’에서 강 교수는 인간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던 길이 자본주의 세상에선 자본축척과 수탈, 착취의 길이 됐다고 이야기한다. 자본주의의 길에서 벗어나 인간의 잠재력을 구현할 수 있는 길을 회복하기 위해 그는 대안으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면서 ‘현재 상태의 지양’을 뜻하는 ‘코뮌주의’적인 길을 제시한다. “대안의 길의 구체적인 형태는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의무적 장거리 이동이 필요가 없는 삶을 발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도시의 형태, 노동의 형태를 바꿔야 하고 길의 형태, 길을 사용하는 방식도 바꿔야 합니다.”
대안의 길에 대한 사유는 이렇게 자본주의적 임금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 교수의 평소 주장과 연결된다. 그는 지난해 12월 고별 강연에서도 ‘노동을 거부할 권리’를 강조했다. 강 교수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 의해 삶이 지배되지 않도록 노동을 거부할 권리도 주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은 인간의 활동 중 하나일 뿐이지 유일한 게 아닙니다. 노동 외에 놀이도 있을 수 있고 연애도 있겠죠.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선 노동이 모든 걸 지배하고 있습니다. 자본은 노동을 귀하게 만들어 사람들이 더 많은 노동을 하도록 만듭니다. 일을 안 하면 못 살게 만드는 거지요. 난개발로 망가지는 지구를 보면 오로지 자본의 축적만을 위해 작동하는 신자유주의가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화제가 된 인공지능과 인간의 바둑 대결은 학자들에게도 많은 과제를 남겼다. 영문학자이지만 인문학은 물론 사회과학, 자연과학을 넘나들며 글을 써온 강 교수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는 “우주 안에서 지금의 인간이란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 본격적으로 나와야 한다”며 “이제 자연과학이 들어오지 않으면 인문학만으로는 더 이상 답할 수 없게 됐다. 새로 인문학을 시작하는 사람은 문을 열고 다른 데로 나아가서 지혜를 찾으려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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