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부진한 지지율과 야권연대론의 여파로 바람 잘 날 없는 국민의당에 신선한 파장이 일었습니다. 당의 이름에 걸맞게 일반 국민을 당 최고위원회에서 초대해 발언을 듣는 이벤트에서 한 청년이 요즘 말로 ‘사이다’ 같은 돌직구 발언으로 당 지도부에 일침을 가한 것입니다. 듣기에 따라 상당히 뼈 아플 얘기였지만, 당 지도부는 오랜만에 정쟁이 아닌 생산적 비판을 듣자 오히려 웃으며 반겼습니다. 국민의당 입장에선 무관심과 포기보다, 비판적 지지 하나가 더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사이다 발언의 주인공은 청년 창업가 최훈민씨였습니다. 스물 둘의 최씨는 정보통신(IT)에 관심이 있어 관련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입시 위주 교육에 반발해 자퇴를 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후 대안학교를 만들어 활동하다 2년 전 꿈꾸던 IT회사를 창업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최씨는 최근 안철수 공동대표가 주최한 현장 대담 일정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돼 16일 당 최고위원회에 국민 대표로 참석하게 됐습니다.
최씨의 발언은 처음부터 거침이 없었습니다. 그는 안 공동대표와 천정배 공동대표 사이에 앉아 “국민의당의 청년정책은 실패했다”고 단언했습니다. 특히 국민의당이 지난달 당 1호 법안으로 홍보한 일명 ‘컴백홈법’(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에 대해 날 선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국민연금을 활용해 청년희망임대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규정한 컴백홈법은 당의 대표적 청년정책으로 꼽히는 법안입니다.
최씨는 “청년주택을 국민연금으로 짓는다? 집권여당도 지키기 어려운 정책을 공약으로 말하는데, 청년들은 이런 대단한 것 바라지 않는다”며 “오히려 사소하지만 현실성 있고 깨알 같은 정책을 원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차라리 국민의당이 청년 창업기업의 물건을 우선 구매해주겠다거나 (당의) 연구 용역 같은 것을 청년에게 주겠단 것이 더 나을 것”이라며 “이런 진정성 있는 정책과 선언들이 나온다면 국민들이 국민의당 모습에 한번쯤 눈을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최씨의 비판은 또 다른 당의 1호 법안인 일명 ‘낙하산방지법’(공공기관의운영에관한법률 개정안)으로도 향했습니다. 그는 “낙하산방지법에 국민들 크게 관심 없다”며 “낙하산 내보내는 여당도 아니고 야당이 하는 선언이라면 더더욱 관심 없다. (낙하산을 내려줄) 권한도 없는데 낙하산 방지가 와 닿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대신 그는 “매주 토요일 국민의당 의원들이 돌아가며 천막을 치고 그 곳에서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선언해라”며 “이런 것이 국민들이 바라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개별 정책 비판에 이어 당의 방향과 현재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최씨는 최고위 회의장을 가득 메운 취재진을 둘러보며 “원래 최고위에 기자들이 이렇게 많이 오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두 대표 사이에서 설전이 있어서 온 것 같기도 하다”고 최근 야권연대를 둘러 싼 안 공동대표와 천 공동대표의 갈등을 에둘러 지적했습니다. 이어 불확실한 노선으로 지지율이 떨어지는 당의 모습에 대해서도 “기존 정당의 모습을 국민의당이 그대로 보여준다면 과연 새누리당을 이기겠나”라고 지적하며 “저는 못 이긴다고 생각한다. 옳고 그름의 차이가 아니라, 아예 색다른 정치, 기존 정치논리가 아닌 다른 정치를 기대했지만 지금은 결국 같은 정치를 하고 있다”고 입 바른 소리를 이어갔습니다.
최씨의 발언 내내 흐뭇한 미소를 짓던 최고위원들은 그의 발언이 끝나자 평소와 달리 환한 표정으로 박수를 쳤습니다. 특히 그를 최고위 상석에 앉힌 안 공동대표는 “쓴 소리 가감 없이 해달라는 부탁 드렸는데 (그렇게 해줘서) 고맙다”며 “큰 거대한 정책보다 깨알 같은 정책 해달란 말씀 깊이 새기겠다”고 화답했습니다. 그에겐 이날 5일 만에 최고위에 복귀한 천 공동대표에 대한 언급 전에 따로 고마움을 표할 정도로 최씨의 발언이 이벤트 이상의 울림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최씨의 발언으로 생동감이 돌던 국민의당은 최씨의 퇴장 이후 다시 기존 정치의 관성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국민의당 지도부는 전날 더불어민주당에서 공천배제된 정호준 의원의 입당 기자회견 이후,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서울 관악과 인천 계양 등에 대한 공천 결과를 논의하는 장시간 회의를 이어간 것입니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최씨에 이어 지속적으로 각 계층과 연령, 직업군 별로 다양한 이야기를 최고위 석상에서 청취할 예정”이라며 “아직 당의 역사가 짧아 운영에 미숙한 점이 있지만,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진정성만큼은 이어간다는 게 지도부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최씨의 발언은 복잡한 여야의 공천 정국에서 그저 짧은 이야기 거리로 잊혀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날 발언이 국민의당 당직자부터, 대다수의 출입기자들에게도 울림이 있는 것은 그만큼 국민의당이 내외부적으로 초심을 잃은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이 만연하기 때문입니다. 28일 뒤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습관처럼 기호 1번 혹은 2번을 찍을지, 최씨처럼 비판적 지지 입장을 가진 채 3번을 찍을지는 여전히 ‘새정치’를 외치고 있는 국민의당 정치인들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정재호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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