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주에 가면 남강을 가로지르는 진주교가 있습니다. 길이 300m 가량 되는, 진주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라지만 언뜻 봐서는 여느 다리와 다를 바 없는 그냥 다리입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좀 특별한 다리입니다. 상판을 떠받치는 교각 아래에 걸려 있는 거대한 황금색 쌍가락지 때문입니다.
이 가락지는 바로 논개를 상징하는 물건입니다. 1593년 진주성이 왜군에게 함락돼 7만 민관군이 희생되자 왜장을 유인해 남강에 빠져 산화한 바로 그 의기 논개 말입니다. 논개는 왜장을 껴안고 물에 뛰어 들 때 깎지 낀 손이 풀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었다고 합니다. 진주교와 인접한 진주성, 그 안의 촉석루, 그리고 그 앞을 엄숙히 흐르는 남강에서는 해마다 논개의 이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논개제, 남강유등축제가 열립니다.
4ㆍ13 총선을 한 달 앞두고 ‘논개’의 이름이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립니다. 많이 회자되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논개의 충절을 기억해준다면 나쁠 것 없겠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가당치 않은 곳에서 이 이름이 쓰인다는 데 있습니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쓰는 ‘논개 작전’, ‘논개 전략’ ‘논개 역할’ 같은 표현이 바로 그겁니다. 한 종합편성채널이 새누리당 공천 문제를 다루면서 비박계 학살에 앞서 친박계를 치는, ‘물귀신 작전’ 의 의미로 논개를 언급한 뒤 너도나도 쓰는 분위기가 돼 버렸습니다.
최근에는 ‘논개 윤상현’이란 말까지 나왔습니다. 새누리당 욕설 파문의 장본인인 윤상현 새누리랑 의원이 15일 결국 공천을 받지 못했습니다. 친박의 아이콘과도 같은 그가 공천을 받지 못하자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는 국회의원의 품위를 현저히 떨어뜨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친유승민, 친이명박계 등 비박계 학살에 따른 반발과 파장을 최소화 하기 위한 전략적 배제라는 게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청와대 정무특보를 지낸 윤 의원은 친박 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에서 적극적 활동을 하는 등 친박계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 내에서는 그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민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인천 남구을에 등록된 새누리당 예비후보는 윤 의원이 유일합니다.
이런 막강 윤 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하자 ‘논개 윤상현’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친박계가 비박계를 내치기 위해서는 자파의 희생도 어느 정도 불가피한 상황에서 친박 간판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윤 의원이 희생됨으로써 다른 친박계 의원 상당수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논리입니다.
이 같은 메타포를 쓰는 정치권을 향해 진주지역문화예술단체는 진작에 경고를 했습니다. 논개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폄하하는 것이니 정치권에서의 ‘논개’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논개의 희생정신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진주시민을 욕되게 하는 행위이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볼썽사나운 정치판의 싸움을 논개의 숭고한 죽음과 같은 선상에 놓은 것이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실제로 진주 지역에서는 “황당하다”, “기가 찬다”는 반응까지 올려 보내고 있습니다. 더러는 “지하의 논개가 울고 있다”고 까지 했습니다.
죽어서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살아 있는 논개입니다. 살아서도 죽어 있는 것만 못한 사람들을 거론할 때 쓰는 단어 선택에 좀 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변영로의 시 한편 붙입니다. 논개에 빗대어졌을 때 부끄럽지 않을 정치인 누구입니까
.
?논개 / 변영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娥眉)
높게 흔들리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 맞추었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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