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을 하나 마감하고 해 뜰 녘 겨우 잠들었는데, 정오가 안 되어 깼다. 창 밖은 훤하고 볕이 따뜻해 보인다. 깨기 직전의 꿈이 생생했으나 돌이키려 보니 가닥이 안 잡힌다. 그리운 사람이나 오래 못 본 사람이 등장했었던 것 같다. 그가 내게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꿈속에서도 분별이 어려웠다. 몸 속이 으스스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찬바람이 꿰뚫고 지나가는 느낌. 거실로 나왔다. 몸의 기운과는 다르게 공기가 훈훈하다. 몸은 아직 겨울 속에 잠들어 있는 느낌인데, 몸 바깥은 어느새 봄볕을 맞아 홀로 약동하는 건가. 이 야릇한 균열이 왠지 따끔하다. 내 안에선 끝난 게 없건만, 뭔가 나 아닌 것들이 많은 게 끝났다고 꼬리를 여미며 다른 쪽으로 눈길을 던지는 느낌이다. 밤샘 여파인지도 모른다. 긴 글을 쓰고 나면 어디 먼 데를 혼자 다녀온 기분이 들곤 하니까. 컴퓨터를 켜고 밤새 썼던 원고를 들여다본다. 불과 수 시간 전에 내가 썼던 글임에도, 많이 낯설고 심지어 난해하기까지 하다. 괜히 또 몸이 으스스해진다. 그러면서 서서히 정신이 든다. 쓸 땐 보이지 않았던 오류와 실수들을 교정하고 집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워 문다. 볕이 느닷없을 정도로 따뜻하다. 무슨 연유인지 겨우내 중단되었던 옆 건물 공사가 재개된다. 봄이 이렇게 와버렸다니. 믿기지 않는다. 몸 안은 여전히 추운데, 공기는 이렇게 따뜻하다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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