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소년이 늘어난다. 중앙자살예방센터에 따르면 월별 청소년 자살자수는 3월이 가장 많고, 그 수는 2012년 37명, 2013년 32명, 2014년 34명에 이른다. 또 우울증 청소년 수는 학기가 시작되는 3월부터 급증세를 보이다 5월에 감소로 돌아선 뒤 여름방학이 지나고 2학기가 시작되는 9월 다시 증가세를 보인다는 조사결과(한국보건사회연구원)도 있다.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계절인 봄에 왜 우리 초ㆍ중ㆍ고 학생들은 죽음을 택하는 것일까.
누구나 예상하는 바, 매년 되풀이되는 우리 청소년의 비극 뒤에는 입시와 학업 부담감에 따른 극심한 우울증이 자리하고 있다. 보고에 따르면 국내 전체 아동ㆍ청소년은 10~15%가 스트레스, 분노, 불안 등 우울 증세로 고통 받고 있다. ‘마음의 감기’인 우울증을 초기에 막지 못하는 뒤틀린 사회 구조가 어린 희생양을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청소년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입시전쟁에 내몰려 영어, 수학, 논술 등에 매달려야 한다. 사교육 ‘일번지’ 대치동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중학교 2학년 수학과정을 마스터하는 것이 오랜 관례다. ‘공부 기계’로 전락한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밤낮으로 오가며 문제지만 쳐다보고 있다. 자신이 무엇이 힘든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부모 또는 교사에게 속내를 터놓을 여유조차 없다.
정작 문제는 우리 사회에 ‘우울한 아이들’에 관심 쏟는 이들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만일 아이가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로 우울 증세를 보여도 이를 알아 챌 부모와 교사는 많지 않다. 아이들도 자신이 마음의 병에 노출 돼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우울증에 노출돼 있다고 여기지 않고 가족 등 주변 사람과 상황이 자신을 화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또 부모와 교사들은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면 자신에게 반항한다고 판단해 꾸중하거나 자책하게 만든다. 우울 증상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아이들이 부모와 교사의 꾸중과 부정적 시선 때문에 정신ㆍ신체적으로 위축을 경험하게 되면 또래와 대인관계가 붕괴되는 등 단절이 심해져 극단적 선택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학원에서 100점을 받으면 뭐든지 사줄게” 라는 말만 되풀이 하는 부모의 귀에 “너무 힘들어 학원 다니기 싫다”는 아이의 말이 제대로 들어올리 없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아이의 말을 비판 없이 잘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자신이 이해 받고 돌봄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고 강조한다.
어느덧 3월 중순, 학원가는 오늘도 불야성이다. 수업을 마친 학생들을 태우기 위해 도로 위에 죽 늘어선 자동차들. 풋풋한 얼굴로 자신을 오랜 시간 기다린 부모의 품으로 뛰어드는 아이들. 환한 얼굴 뒤에 말못할 고민을 숨기고 있는 슬픈 동심(童心)은 얼마나 될까.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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