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상주농약사이다’ 사건이라는 ‘청송농약소주’사건을 수사 중인 경북지방경찰청과 청송경찰서는 사건발생 5일이 되도록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누가, 왜 그런 짓을 벌였는지 의문인 가운데 상주와 달리 사건이 장기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경찰, ‘마을 사람 중 범인’ 무게
경북지방경찰청은 범인이 마을회관 내부구조와 주민들의 생활 패턴을 잘 아는 마을 내부 사람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라고 14일 밝혔다.
경찰은 범인이 마을회관을 출입하는 불특정 다수의 마을 사람을 해치려 했거나 특정인과의 원한관계로 이 같은 일을 벌였을 것으로 보고 다각도로 수사 중이다. 마시고 남은 소주병에서 지문과 DNA를 채취, 마을사람 등과 대조하고, 이 마을에 사는 52가구 98명 모두를 상대로 사건발생 전후 행적과 원한관계 등을 탐문수사 중이다. 이와 함께 농약이 든 소주병이 새 병이었는지, 아니면 한번 열었다가 닫은 것인지 확인되지 않음에 따라 유통 과정에 문제의 농약이 투입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마을회관서 소주 나눠 마신 2명 중 1명 사망 1명 중태
지난 9일 오후 9시40분쯤 현동면 마을회관에서 소주를 나눠 마신 이 마을 이장 박모(62)씨와 3년 전 이장인 허모(67)씨가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박씨는 이튿날 오전 8시10분쯤 숨지고 허씨는 5일 현재 산소호흡기를 부착한 채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당시 마을 회관에는 농한기를 맞아 주민들이 TV를 시청하거나 화투놀이를 하는 등 여가를 보내고 있었으며, 작은 방에 박씨 등 8명, 거실에 5명 모두 13명이 마을회관에 있었다. 박씨 등이 나눠 마신 소주는 작은 방 한 구석에 놓여 있던 김치냉장고에 보관 중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대구과학수사연구소는 반 병 가량 남은 소주병에서 2012년 판매ㆍ사용이 금지된 무색무취의 농약인 ‘메소밀’ 성분을 검출했다.
장기화 가능성 높아
지난해 7월 경북 상주 농약사건과 달리 이번 사건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상주농약사이다 사건은 마을회관에 있던 주민 7명 중 6명이 고독성 농약인 ‘메소밀’이 든 사이다를 마셔 그 중 2명이 숨졌다. 사건발생 초기부터 당시 석연찮은 이유로 사이다를 마시지 않은 박모(83)씨가 용의선상에 올랐고, 경찰은 각종 증거를 확보해 구속했다. 검찰도 거짓말탐지기 등 보강수사를 통해 기소,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아낼 수 있었다.
‘청송농약소주’ 사건은 상주농약사이다사건과 달리 현재로선 단서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농약소주를 김치냉장고에서 꺼내와 병뚜껑을 따고 술잔에 따른 사람은 숨진 박씨였다. 또 마을 회관에 주로 모이는 사람 중 소주를 즐겨 마시는 사람은 10여 명으로 특정인만 노리기에는 어려운 구조다. 게다가 이 마을 회관은 국도 31호선에서 건물까지 불과 10m 가량밖에 되지 않고, 평소 2개의 출입문을 제대로 잠가놓지 않은 경우가 많아 마을사람은 물론 외지인들도 별 무리 없이 출입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마을 회관에는 폐쇄회로TV(CCTV)가 전혀 없다. 마을회관 후방 약 700m 지점에 방범용 CCTV가, 1.1㎞ 가량 전방에 속도위반 단속 카메라가 있지만 차량 통행이 많은 국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유의미한 자료를 확보하기 어렵다.
경찰은 이 마을에 대한 탐문수사를 통해 4가구에서 8병의 메소밀을 보관 중인 사실을 확인했으나 판매금지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농가에서 문제의 농약을 사용하는 게 현실이고, 특별한 혐의점을 찾지 못해 난관에 봉착한 상태다.
경북지방경찰청 박종화 강력계장은 “지금까지 사건해결을 위한 뚜렷한 실마리를 찾지 못한 상태”라며 “마을 회관을 출입하는 불특정 다수를 노렸거나 개인간의 원한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이라며 “유통 과정에 농약이 투입됐을 가능성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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