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꼬박 조개 껍질만 뗄 때도 있어요.”
지난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1층 보존과학부 연구실. 하루 종일 거의 한 마디 않고 깨진 토기에 들러 붙은 조개껍데기를 떼내고 있던 황현성 학예연구사가 기자의 질문에 겨우 입을 뗐다.
황 학예연구사가 끌어 안고 있는 토기 파편은 1970년대 후반 전남 신안 해저에서 출토됐다. 유약 처리를 하지 않은 토기는 자기에 비해 이물질 흡착이 심해 제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는 “몇 십 년 걸리는 작업도 많으니 일주일은 축에도 못 낀다”며 웃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유물보존처리를 맡은 보존과학부가 올해로 설립 40주년을 맞았다. 중앙박물관은 1969년 생겨난 문화재연구실(현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이어 국내 두 번째 역사와 규모의 유물보존 전담 공조직이다. 김해 예안리 고분군 발굴 철검에서 시작해 지난해 말까지 약 2만 8,000여 점의 문화재에 새 생명을 불어 넣었다. 40주년에 맞춰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5월 10일까지 보존처리된 대표 문화재 57점을 보여주는 ‘보존과학, 우리문화재를 지키다’ 전시도 열고 있다.
모든 것을 빨리 처리하는 게 미덕인 시대에 보존과학부는 드물게도 느린 삶을 지향하는 곳이다. 솔로 유물에 뭍은 먼지를 살살 털어내는 모습은 느리다 못해 지루하기만 할 것 같다. 하지만 학예사들은 의외로 “지루할 틈이 없다”고 말한다. “계속 같은 일을 하는 듯 보이지만 파편의 깨진 모양도 직물의 올도 제각기 다르다”며 새로운 것이 ‘툭툭’ 튀어나오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세월의 흔적을 한 꺼풀씩 걷어내다 만나는 글자나 문양은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이 직업만의 희열을 안겨준다. 박승원 학예연구사는 박물관 한쪽 벽 포스터의 고리자루 칼(1921년 금관총 출토)을 가리키며 들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발굴 당시에는 볼 수 없었던 ‘?斯智王(이사지왕)’이라는 명문이 보존처리 과정에서 나왔어요. 이 글자 자체가 처음인데다 무덤 주인까지 추정할 수 있는 자료였어요.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이 가세요?”
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는 단 두 명으로 시작한 인원이 30여명으로 늘고 기술도 상당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입을 모은다. 보유한 주요 기자재는 X선 형광분석기 등 19종뿐이다. 2014년 보존처리 완료 건수는 1,600여점이다. 보존처리를 기다리고 있는 수장고의 유물은 얼마일까. 38만 점이다. 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 창립 멤버인 이오희 전 한국전통문화대 석좌교수는 “문화재 진위 논란 등 유물과 관련해 산적한 문제를 보존과학 발전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은별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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