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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복지로 정치를 지배하라

입력
2016.03.1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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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는 정치의 장에서 결정된다.

복지국가는 시장의 원리와 순기능은 존중하되, 그 시장이 갖고 있는 비수, 즉 승자독식의 정글법칙에 따른 경제적ㆍ사회적 불평등 확대라는 치명적 결함을 사회적으로 제거하고 자본과 시장을 사회적으로 통제하기 위하여 각종 방책을 만들어내는 국가체제다. 국가의 역할 없이 그냥 시민의 미덕이나 공동체의 발전으로 복지국가가 성립할 수는 없다. 국가의 역할은 집권세력에 의해 결정되고, 그 집권세력은 정당을 기반으로 하여 국민들의 투표에 의해 선택받은 존재들이다. 그래서 복지국가는 정치일 수밖에 없다. 다만 그것이 정치적 권리의 행사자인 국민들에게 이성적으로 인식은 되지만 실천적 행위로 적극 활용되지 않는 것일 뿐.

이 인식과 행위 사이의 불일치가 가장 심한 나라 중 하나가 우리나라가 아닐까 한다. 정치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면서도 그 정치에 대해 가장 조롱하고 냉소적인 야누스의 모습을 보이는 우리들 아니던가.

비록 2011년 자료이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 투표율 70.5%에 비해 한국이 46.0%를 보임으로써 압도적으로 꼴찌 수준에 이른다는 사실은 2016년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투표율의 하락 추세도 매우 거세어 1980년부터 따지면 무려 32%포인트나 하락, 그 폭이 OECD 최고 수준에 버금간다. 결국 유권자 중 절반만 투표하여 절반의 지지로 당선되니 전체의 25%밖에는 지지받지 못한 대표자가 속출하는, 대의민주주의의 심각한 허점을 노출시키는 대한민국이다.

그뿐인가. 이른바 ‘계급배반의 투표’라는 아이러니도 존재한다. 시장과 자본의 제어 정책에 의해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있는 빈곤 계층일수록 그런 정책을 제시하는 진보정당에 표를 주지 않는 현상. 한국종합사회조사를 통해 소득 수준별 중도 및 진보정당 지지도를 분석한 전병유ㆍ신진욱에 따르면, 분석 기간인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저소득층은 이들 정당에 대한 사회의 평균적 지지도를 한 번도 넘어본 적이 없다. 그에 비하면 중산층과 고소득층은 평균을 웃도는 지지도를 조사 기간 대부분에서 보이고 있다.

희망은 없는가. 불행에 기초한 희망이지만 사회적 분노 게이지가 해가 갈수록 쌓여간다. 청년의 절망 어린 탄식이 도를 넘어섰고, 비정규직의 비애와 설움도 커진다. 퇴직한 장년이 선택한 자영업의 앞길은 고달픈 데다 폐업의 수순이다. 산업화의 역군인 노인층은 절반이 빈곤 상태다. 양성평등의 정책 아젠다가 20년에 걸쳐 이야기되었지만 여전히 일자리와 가사, 조직 내 승진 등에서 여성은 여전히 열위에 있다. 이들의 사회적 분노는 비등점을 넘어섰다.

또 다른 희망은 계급의 배반 투표가 결코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연령이란 변수를 통제하고 나면 오히려 빈곤층과 중산층은 그들의 이해와 일치하는 투표를 한다는 것이다. 노인층, 그 중에도 빈곤한 노인층의 이념적 보수성이 전체 투표 성향을 교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와 1980년대 사회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승리 경험을 가지고 있는 베이비부머 이후의 세대들이 노인층에 편입되면서 사회변혁의 우군이 될 가능성 있는 노인층도 늘어난다.

서구 복지국가의 역사가 보여주건대, 각 계급과 계층, 세대가 지닌 공통의 희망을 집약하는 것에 보편적 복지만 한 것은 없다. 청년들에겐 고용보험에서 실업과 직업 이전에 따른 위험을 보장해주고, 노인은 기초연금 30만원의 사회적 보상에 위로받을 수 있도록, 여성들에겐 사보육비와 사교육비 없이 아이를 보란 듯 키우고 경력단절 없이 일할 수 있도록 희망으로의 탈출구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이것이 선거용이 아니라 집권 가능성이 있는 책임 있는 정당이 선거에 관계없이 평소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주창하고 국민을 설득함으로써 신뢰를 쌓아가는 일이 핵심이다.

복지로 정치를 지배하는 일, 그것은 정치로 세상을 바꾸는 진정한 길이다.

이태수 꽃동네대 사회복지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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