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차량가액 1억원)와 아반떼(차량가액 1,000만원)가 충돌해 차량 두 대가 전손됐습니다. 과실 비율은 9 대 1로 벤츠 운전자 잘못이 더 컸습니다. 하지만 각자 배상할 금액을 살펴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아반떼 차주는 벤츠 차주에게 1,000만원을 물어줘야 하지만 벤츠 차주는 아반떼 차주에게 900만원만 주면 됩니다. 과실이 적어도 더 많은 보험금을 지불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아반떼 차주는 이 사고로 인해 보험료가 할증됩니다. 외제차의 고가 수리비가 상대적으로 저가인 국산차 운전자에게 보험료로 전가되고 있는 것입니다.
보험개발원이 볼보가 6월 출시하는 ‘올 뉴 XC90’에 대해 외제차 중 처음으로 자기차량손해담보 보험료 산정을 위한 차량모델 등급평가를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주목하는 이유도 외제차의 비싼 수리비를 인하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외제차 업체는 좋은 등급을 받으려면 수리비의 근간이 되는 부품공급 가격을 낮게 제시해야만 합니다. (관련기사 http://www.hankookilbo.com/v/2ff7950bc14d4c87be823b8a47c3227e)
이제 사회적 문제가 돼 버린 외제차의 고가 수리비는 불투명한 유통 구조 탓이 큽니다. 외제차 업체들은 직영 서비스센터를 통해 부품을 독점 유통하고 있고 이렇게 산정된 외제차의 부품 가격은 국산보다 통상 4.6배 비쌉니다.
보험개발원과 보험업계는 외제차 수리비를 낮추면 급증하는 자동차보험의 손해율도 안정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보험사들은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치솟는 주범 중 하나로 외제차의 고가 수리비를 꼽습니다. 실제로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82.3%(2011년)에서 88%(2015년 추정치)로 매년 증가 추세인데요. 보험사들은 올 1월 들어 보험료를 대폭 인상한 것도 손해율 때문이 크다고 설명합니다. 무사고 가입자들까지 보험료를 더 내며 외제차 수리비를 떠안고 있는 셈입니다.
닮은꼴 논란은 하나 더 있습니다. 아이폰과 비(非)아이폰 이용자로 희비가 엇갈리는 휴대폰보험입니다. 휴대폰보험은 월 3,000~5,000원을 납부하면 파손, 분실 또는 도난 발생 시 80만원 상당 한도로 보험금을 지급합니다. 고가 스마트폰이 많아지면서 휴대폰보험 가입자도 늘고 있습니다.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휴대폰보험 가입 건수는 2014년 616만건에서 지난해 말 기준 783만건으로 늘어났습니다.
문제는 전체 보험료 납부액 가운데 아이폰 이용자가 낸 보험료 비중은 27%(776억1,476만원)에 불과한 반면, 지급 보험금은 48%(114억7,200만원)로 절반에 육박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경향은 손해율에서도 나타납니다. 비 아이폰 손해율은 58%에 그치는데 비해 아이폰 손해율은 148%로 전체 손해율(82%)에 2배에 달합니다. 높은 손해율이 발생하는 아이폰에 대한 보험금을 비아이폰 이용자가 납부한 보험료로 충당하고 있는 꼴입니다.
이 역시 애플의 독특한 A/S 정책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삼성 갤럭시의 경우 서비스센터를 통해 문제가 발생한 부품만 수리하거나 교체할 수 있지만, 아이폰은 무조건 교환해야 하는 일명 리퍼 정책을 시행하다 보니 비용이 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살짝 흠집만 나도 부품을 새로 갈아 끼워 비싼 수리비를 받는 외제차 서비스센터 관행과 유사합니다.
논란이 일자 KT는 지난달 1일 아이폰 휴대폰보험에서 자기 부담금을 손해액의 20%에서 30%로 조정했습니다. 또 아이폰을 리퍼할 때의 최고 보상 한도도 25만원으로 제한했습니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도 지난해 하반기에 아이폰 보험의 자기 부담금을 손해액의 30%로 높인 바 있습니다.
금융당국도 최근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스마트폰 별로 손해율을 측정해 휴대폰보험료 차등화 방안을 강구할 방침입니다. 보험업계는 이에 더해 불합리한 A/S 정책도 동시에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국산품 이용자들이 보험 시장에서 자신도 모르게 ‘봉’이 되지 않도록 형평성을 담보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입니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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