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12일 제3국에서 패싸움을 피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경우의 수가 많아지는 패싸움이 인공지능의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알파고는 이세돌 9단과 두 차례 대국하면서 한 번도 패싸움을 하지 않았다. 패가 나오지 않는 행마를 만드는 모습 때문에 ‘혹시 알파고가 패를 피하는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제기됐다. 바둑의 패는 양쪽 돌이 서로 잡고 잡힐 수 있도록 물려 있는 형태로, 패싸움이 벌어지면 바둑판 위 상황은 복잡해진다.
이날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제3국에서 이세돌 9단은 기어코 패를 만들어냈다. 집바둑에서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이 9단은 알파고가 만든 백집에 패싸움을 거는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고, 이번 대국 시작 후 처음으로 패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알파고는 하변에서 이세돌 9단의 흑돌을 따가는 등 패싸움을 못 한다는 추정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알파고는 패에서 흑돌을 쉽게 따갈 수 있는 상황을 보고도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변에서 이세돌 9단이 불리한 패를 만들었는데도 알파고는 받지 않고 상변에 착수한 것이다.
이에 대해 프로기사 김만수 8단은 “알파고는 패를 알고 잘 다루지만,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다”며 “패는 경우의 수가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알파고가 패를 꺼리는 배경에는 치밀한 수읽기가 있다는 분석이다. 김 8단은 “인간 기사들은 눈앞의 패가 있으면 당연히 따간다. 그러나 알파고는 패싸움에서 지는 경우까지 들여다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패싸움에서 졌을 경우의 전체 승산을 계산해 손해가 크다고 판단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이는 전성기 이창호 9단의 모습”이라며 “알파고가 학습한 기보 데이터가 이창호 9단의 전성기 시절이어서 알파고가 이런 모습을 갖게 된 게 아닐까”라고 추정했다. 이다혜 4단도 “알파고가 패싸움을 안 하려는 것은 맞다. 1·2국에서 패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이 몇 번 있었는데 쉽게 처리했다”고 말했다. 이 4단은 “패는 굉장히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패가 나면 경우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나니 알파고가 안 좋아한다. 지는 확률을 줄이기를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늘 이세돌 9단이 지능적으로 패를 만들었다”고 감탄하며 “알파고는 패싸움에 약하다기 보다는 좋아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이세돌 9단은 이날 패싸움을 이끄는 성과를 냈지만, 팻감 부족으로 이길 길을 찾지 못해 불계패를 선언하고 말았다.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